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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Sep 11. 2021

미운 나를 껴안는 연습의 기록을 전달하는

정지음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

한 번도 정신과를 찾은 적이 없다. 건강할 거란 자신보다는 돈도 시간도 용기도 없다. 그렇다 보니 나 자신의 정신과를 나로 삼는다. 내심 인터넷과 책을 통해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ADHD라는 단어와 병증에 대해 서술한 글을 마주하면 내 얘기는 아닐지 조바심을 낸다. 사실 두 가지 마음이 함께인데 저 단어들이 나를 설명하는 말들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과 내가 저런 단어들로라도 설명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그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 없이 병증을 낭만화하고 그런 ‘특별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혹은 내가 나를 잘 모르겠는데, 저런 단어들로 나를 규정하고 싶은 모습이 서늘하게 느껴지면 도리질을 하며 이내 이런 생각을 떨쳐내려 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끝내는 서점에서 옆구리 사이에 끼고 집으로 온 이유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오, 나도 이래. 나도 혹시?’와 ‘오, 난 이렇진 않은데. 역시 나는.’이라는 이상한 마음에 시달릴 것을 알아서 읽고 싶지 않았고,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읽고 싶어졌다. 어디서 기인한 것일지 모르는 생각이지만 ‘늘 나는 내 정상성을 점치고 싶구나,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누군가 규정해줬으면 할 때가 있구나, 그 안에서 안도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함께 얻는구나.’ 정도로 가늠할 뿐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쭈뼛쭈뼛 사들고 와 집 한편에 책을 두고도 ‘맞는 때’를 찾아 읽으려 바로 펼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 대상 작가들의 음(mm) 북 토크가 열렸고 책 보다 #정지음 작가의 목소리와 말을 먼저 접했다. 마음을 사로잡는 담담한 말들, 그리고 짧은 기간에 써냈는데 브런치 대상까지 받았다는 글과 이 천재가 누구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어졌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책을 열어 그날 모두 읽어냈다.


같은 병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기 위해,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썼다는 글. 지음이라는 이름처럼 짓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정지음 작가 의 첫 책은 ADHD의 슬픔, 뿐 아니라 기쁨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지음의 글에서 지음의 반짝이는 모습과 수려한 문장들을 잔뜩 발견해버리고는 ‘혹시 나도 ADHD…?’ 해버렸다. 모든 ADHD가 그렇지 않을진대 정지음 작가 같은 위트 넘치고 반짝이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감히 또 함부로 ADHD여도 좋겠다고 생각해버릴 만큼 글이 좋았다. 갖고 싶은 재능이다. 라임도 살아있다. MBTI론 ENFP에, 애니어그램으로는 7번인 나와 그 정도는 다르지만 각 면모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지점들을 발견하며 꼭 ADHD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면모’를 지닌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기쁨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 질환들을 무작정 사랑하려고도 해 보았다. 하지만 긍정은 흥정의 영역이 아니었다. 책다운 기승전결보다는 내가 여기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살아 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모난 책장에서 만난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마모시키며 둥글어진다면 그제야 의문 없이 기쁠 것 같았다. p.11


글의 ‘질환’이란 단어를 ‘못남’으로 치환해 읽었을 때 나는 정지음 작가의 고통을 통해 조금 더 나의 고통이 둥글어짐을 느꼈다. 병이던 선천적인 환경이던 후천적인 상황이던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 정지음의 무너짐의 기록과 무너지지 않기 위한 시도와 노력, 절제와 다짐, 또다시 무너짐을 반복하는 모습은 어떤 병명을 진단받지 않거나 못한, 그럼에도 어딘가 늘 아프다 느끼는 우리와 닮아있다. 결국 각자의 모양새에서 타인은 축복으로 느끼는 비극도, 타인이 비극이라 느끼는 축복도 탄생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계속 나 자신과 새로이 조우하며 보듬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정지음 작가가 그렇듯이. 내 사랑하는 이들 중, 오늘은 조금 더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지는 당신에게 지음의 연습의 기록인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당신과 내가 서로의 고통을 다듬는 것을 연습하며,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부딪히며 각자의 뾰족한 모양을 조금 더 반들거리고 껴안기 알맞은 형태로 다듬어 나가는 나날들을 기대하며.


유머에 편승한 결과로, 제가 못난 게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꾸밈없는 거라는 이해도 갖게 됐어요. ADHD 비극의 본질은 과한 착장을 요구하는 사회와 맨몸으로 맞닥뜨린 것일 뿐이라고, 나는 미친 게 아니라 지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건 지능이나 기능보다 위로일지 모르겠어요. 세련된 위로는 내가 계속 나여도 된다는 확신을 주잖아요. 세상을 노려보느라 건조해진 눈알에 물기를 핑 돌게 하고요. p.186


사족. 추천에 덧붙여,  다음에 정지음 작가님이 무언가에 뽷! 집중하게 된다면 그게 힙합이었으면 하게 된다. 라임을 발견하는 재미를 꼭 놓치지 말고 읽어보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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