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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Oct 16. 2021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의 얼굴을 비추는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처음으로 타다를 탄 날이 기억난다. 이전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진행되었던 해커톤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였는데, 참여자들의 저녁 식사로 맥도날드를 잔뜩 주문해두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마침 장대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던 날이기도 하다. 택시를 잡아 탈까도 생각했지만 몇십 명분의 햄버거 세트를 받아 매장 내외를 오가며 차에 실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맥도날드 매장에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애매한 위치에서 그 과정을 기다려줘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궂은 날씨에 화 한 번 안 낼 기사님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날이었다. 그날 처음 잡아탄 타다 기사님은 침묵이라는 타다의 황금률을 지켜주시면서도 햄버거 적재와 이동이 무사히 될 수 있도록 팔 걷어붙이고 손수 도와주셨다. 기사님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날 타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바로 Locked in 고객이 되었다.


내 주변에선 이미 사전 관람으로 많이들 봤을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사이드(SIDE.) 관람권 당첨으로 보고 왔다. 스타트업이라기엔 자영업 같았던, 자영업이라기엔 스타트업 같았던 지난 창업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창업가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보러 갔다.


오, 근데 이 영화 시작부터 아름답다? 하루 800만에 가까운 사람이 새벽을 깨우고, 밤을 닫으며 바쁘게 이동하는 도시 서울. 직선 중심의 타다 BI처럼 수평과 균형이 잘 잡힌 앵글로 광화문, 여의도, 한강, 강남역... 서울을 참 아름답게 담았다. 서울 관광 엽서 같은 풍광을 담아내고, 그 아름다운 서울을 누비는 타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라진 서비스 타다 베이직의 향수를 일게 하며 시작하는 영화에, 감정적으로 약간 지며 시작한다. 거기에 윤석철이 디렉팅한 재즈 선율. 피아노를 멜로디로 잔잔히 깔리는 베이스 소리가 합쳐지니, 나는 일단 울며 시작하기로 합니다.


[Playlist] 윤석철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OST


영화를 보기 전 제일 걱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타다라는 절대 선이자 혁신의 아이콘이 참담하게 기성 권력으로 인해 무너지는 새드 엔딩을 딛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멋진 창업자와 VCNC! 이것이 존버 정신 스타트업! 대한민국 스타트업, 당신은 혁신입니다. 파이팅!’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리두기를 참 잘한다. 타다가 겪어온 상황을 동정하지도, 타다를 대변해서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타다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은 무. 적. 건. 다르고, 힙하고, 쉽게 할 말도 있어 보이게 해야 하고, 우리만 세상을 바꿀 거고… 하는 등의… 지나친 ‘스타트업 뽕’을 좋아하지 않는데 스타트업을 대하는 그런 뽕 레이어가 영화에 없어 좋았다.


대신 이 영화는 기존 스타트업 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잘 나가는’ 대표의 이미지가 아니라 최대한 진짜 ‘제이크’ (VCNC 대표)와 그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을 비춘다. 잘 해내고 싶은 개인들의 수고, 꼼꼼히 무언가를 준비한 개인들의 자신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에 촉각을 세우는 개인들의 배려심, 뜻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고 있을 때의 개인들의 두려움과 불면의 밤, 문제 해결에 진력을 다하느라 소진된 개인들의 지친 얼굴. 이 영화는 그들을 통해 다양한 포지션과 레벨의 구성원들의 얼굴과 한 때를 비추며 모두가 아는 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이 영화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그 개인의 얼굴들이, 이 영화가 ‘스타트업’만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도록 한다. 비로소 모두에게 이것이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도록 만든다.


영화를 보기 전 흥미롭지만 이 영화가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지를 반신반의했던 것이 무색하게 타다를 둘러싼 이 이야기가 스타트업에 국한되어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겐 타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2019-2020년의 <대한민국 스타트업 리더십의 초상>, <대한민국 표심 정치의 초상>, <대한민국 먹고사니즘의 초상>, <대한민국 이동 약자의 초상> 등으로 읽혔다.


특히 가장 눈이 갔던 지점들은 다양한 인물들이 문제 상황을 마주하고 이를 풀어가는 시각의 차이와 문제를 풀어 나감에 있어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지에 대한 태도의 차이였다.


누군가는 스스로 계속 묻는다. 그것이 진짜 문제의 원인이 맞는가? 그게 사람들이 정말 불편해하는 지점인가? 갈등 안에 숨은 다른 역학관계가 존재하진 않는가? 단기적으로 미봉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것인가? 미움받지 않기 위한 해결을 할 것인가 진짜 해결을 할 것인가? 기존의 경험과 이번의 경험에서 차이를 만들게 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이 문제 상황에서 떠나고 싶은가? 괴로울 것이 뻔하지만 이 문제를 끝까지 붙들어보고 싶은가?


묻는 사람은 듣는다. 타인의 목소리도, 자신의 목소리도. 누군가는 묻지 않는다. 묻지 않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다. 손에 쥐어진 의사봉을 휘두른다. 모든 것을 쉽게 피상적으로 종결시킨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지, 회사에서 일하던지, 정치 현안을 풀어나가던지, 혹은 그러지 않던지, 우리는 살면서 계속 문제를 만난다.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누군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내게 책임은 없지만 내가 오지랖을 떨고 싶은 누군가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묻고 들을 것인지, 의사봉을 휘두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때 우리는 이 영화에서 봤던 인물들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VCNC가 이번엔 토스에 인수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토스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그리는 것인지 이것이 어떤 전략적 투자일지, 둘의 시너지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도 궁금하지만, 영화를 보면 영화 속 개인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게 된다. 부디 고생으로 뿌린 씨의 단 열매를 거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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