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웃으며 살아간다.
어제, 브런치에서 전유성 선생님의 묘비명을 다시 읽었다.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은 전유성이 남긴 묘비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역시 코미디언답다. 마지막까지 진정한 개그였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철학자였다.
“웃지 마, 너도 곧 와.”
그 한 문장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어떤 이에게는 웃음으로,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허무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각의 꼬리를 물며 다가온다.
나에게 묻는다면, 그것은 성찰이었다.
정말 오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왜 **울지 마**가 아니라 **웃지 마 ** 였을까.
그는 왜 마지막까지 웃음을 택했을까.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울지 마, 너도 곧 와."
그는 끝까지 웃음을 놓지 않았고.
나는 끝까지 눈물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단 일곱 글자가
이토록 여러 방향으로 번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에게 그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철학자로 남았다.
어떤 이는 그 말을 듣고 웃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멈춰 섰다.
그게 말의 힘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생 별거 없다.
슬퍼할 것도, 좋아할 것도,
결국 모두 잠시 스쳐가는 일들이다.
사는 동안,
그저 살다 가라.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웃고 견디고 있을까.
누군가 내 삶을 기억한다면,
나 역시 웃음으로 버텼던 사람,
끝까지 삶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오늘의 끝은, 내일의 시작이었다.
그는 웃으며 떠났고,
나는 웃으며 살아간다.
사는 동안, 그저 살다 가라.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그래서 나는,
울고 웃으며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