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짝사랑

돌아온 아들 , 낯선 얼굴

by 감차즈맘 서이윤

4개월 만의 재회.

아들이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똑같을 줄 알았는데,

뭔지 모르게 달라져 있는 아들이 낯설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또 봐도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게 말이 많았던 ‘삼천 마디 아들’이

말이 없어졌다는 것.


그런 아들이 낯선 걸까.

아니면,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아들을 낯설게 느끼게 된 걸까.


집에 돌아온 후

아들은 쉬지 않고 내리 잠을 잤다.


먹고 싶은 걸 말해 보라 하니

예전에 잘 가던 식당에 가자고 했다.

데려가면

“맛이 변했다”며

입이 짧아진 아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가고 난 뒤

나는 요리를 잘 하지 않았다.

매일 하던 음식은

이제 일주일에 두세 번,

그것도 아주 간소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아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랜만에 집에서 음식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세 그릇이나 먹는 아들을 보며

밖에서 곯았나 싶을 정도였다.


그제야 나는

아, 이제야 이 아이는 아직

엄마 밥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위로가 되었다.


며칠을 집밥으로 보내더니

입맛이 돌았나 보다.

이번에는 여기저기 가고 싶은 데도 많아졌다.


하지만 막상 가면

아들은 어딘가 실망한 얼굴이다.

나도 같이

실망한 얼굴.


뭔가 변한 것 같은데

뭐가 변했는지

잘 모르겠는 요즘이다.


남편은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하고 넘기지만

나는

도무지 넘겨지지가 않는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되나 보다.


더 이상

엄마의 손길도

엄마의 조언도

필요 없어지는 시간이

오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하루라도 빨리

추근대지 말고

정리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뭔지 모를 허전함과 공허함이

나를 채운다.


아이를 키울 때는

끝까지

내 품 안에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그 착각은

열정이 되어

아이를 열심히 키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열정이

다시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그 이름을

'갱년기' 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허무해져서일까.

공허해서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불러야

이 마음에서 잠시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어서일까.


헷갈리는 요즘이다.


아들 얼굴을

요리조리 들여다 보고

또 바라봐도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그 대답은

아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건가 보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

생각이 많아

답을 찾고 있는 건지.


성탄절...

일 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간인데도

마음이 들뜨지가 않는다.


아마도

이 마음은

늘 짝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은

엄마의 짝사랑으로 이루어진

끝내 완성되지 않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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