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의 아빠는 왜 통화를 할 때마다 같은 말을 했을까.
“자식이 제일 좋다.
물어볼 것도 없다. 최고로 좋다.”
아빠는 망설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큰소리로, 당당하게 그렇게 답했다.
그것이 나는 늘 이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말을 안 들어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아빠는 어떻게 자식이 가장 좋을 수 있었을까.
아흔이 넘은 아빠에게
자식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다시 물으면
아빠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한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빠의 말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습관처럼 굳어진 말이었을까.
내가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고 불평하면
아빠는 꼭 나를 말렸다.
“애들이 듣는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러면서도 늘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더 키워봐라.
그러면 친구도, 돈도, 명예도
다 필요 없어진다.”
그 말은 나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입을 다물게 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가 보다.
크면… 정말 더 좋아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이제 열여덟, 스무 살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 좋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것 같다가도 버겁고,
버거운 것 같다가도 마음이 쓰인다.
연락이 없으면 왜 없나 걱정이 되고,
연락이 오면 무슨 일인가 가슴이 먼저 철렁한다.
아흔 살의 아빠처럼
자식이 절대적으로 좋은 존재인지,
나는 아직 확신이 없다.
내가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아빠가 특별한 사람이었던 걸까.
아빠의 그 말이 위로였는지,
나를 다물게 하려는 말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흔이 되면 알게 될까.
아니면 세월이 흘러도
끝내 모른 채로 남을까.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호기심을 주고,
질문을 던진다.
그런 걸 보면,
아직은
살 만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