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킨 말들이 돌아온 밤

딸의 발끝에서 들여온 말.

by 감차즈맘 서이윤

드디어 딸이 돌아왔다.

새해를 넘기고서야, 1월 3일이 되어서야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덤덤한 얼굴로 집에 들어온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공항으로 마중 나갈 필요도 없었다.

학교에서 공항 픽업 서비스를 제공했고,

미리 예약만 하면 학교에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모든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딸을 보며

이상하게도 서운함 같은 것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아쉬움이라고 하기엔 또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공항에 픽업하러 가도 괜찮다는데도

굳이 말리던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다.


서운함도, 아쉬움도 아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 사이에서

나는 그냥 멈춰 서 있었다.


한국 마켓에 가서 잔뜩 장을 보고 돌아오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딸은 인사만 툭 하고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또 괜히 야속해졌다.

물론 그건 전부 내 마음일 뿐,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다.


그저 남편 앞에서만 큰소리를 내는 나.

가끔은 그마저도 없으면

어찌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다시 연습하러 들어가겠다며 닫힌 딸의 방문을

나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작년에도 이렇게 비가 많이 왔었나 싶을 만큼

유난히 많이 내리는 비였다.


나는 비옷을 입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위해

무작정 산책길에 나섰다.


어두워진 밤,

벌써 저녁 아홉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말을 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야?”

“배불러서 산책 중이야.”

“왜? 나랑 같이 걷자고 말하지! 금방 갈게.”


남편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이 조금 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사람은 얄팍하다.

아니, 내가 얄팍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은 나약한 걸까,

아니면 내가 유난히 나약한 걸까.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다가도

자식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렇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지

나 자신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 시간을 넘게 산책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밤 열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딸이 물었다.


“엄마, 괜찮아?”


“응, 배가 너무 불러서 산책하고 왔어.”


잠시 후 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 며칠 후면 학교 기숙사로 가야 하니까

오늘은 엄마 옆에서 잘게.”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속도 없는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무뚝뚝한 딸이

그저 그 한마디를 건넸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딸의 차가운 발이

내 쪽으로 툭 얹힌 채 누워 있을 때

딸이 말했다.


“엄마, 나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


놀라서 딸을 바라보자

딸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예전엔 엄마가

할 말 다 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까

엄마는 할 말을 참고 살았더라.”


“내가 속을 너무 썩였지…

돌아보니 엄마한테 제일 미안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아빠 말대로

자식은 자기가 고생해 보면

부모를 알아본다더니,

그 시간이 온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말을 던지고는

깊은 잠에 빠져든 딸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누워 있었다.


나에게는

오른쪽 어금니와

왼쪽 윗 어금니 반쪽이 없다.

언젠가는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어느 날 밥을 먹다

양쪽 어금니가 깨졌다.

병원에서

의사는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되묻자

의사는 말했다.


“어금니를 이렇게 꽉 다물 일이

얼마나 많았길래

멀쩡한 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어린 딸의 눈에는

엄마가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보다 먼저 삼키는 법을 배웠다.


결혼 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살던 나와 달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말을 삼키는 사람이 되어갔다.


큰소리를 내야 했던 순간들은

열 번도 아니었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불길처럼 번졌을 뿐이었다.


그 모습만 보았던 딸에게

나는 할 말 다 하고 사는 엄마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 되어

여행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딸은 이제야

내 속을 들여다본 모양이다.


내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쓰였다.


아직은

그 세상을 다 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인데,

앞으로 십 년은 더 철이 없어도 되는 나이인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빨리 알아버리는지.


불을 끄고 누웠지만

정신은 한참이나 말똥말똥했다.

딸의 발끝이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와 있었다.


말하지 못한 시간들

삼켜낸 말들,

깨져버린 어금니까지.


나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그 옆에

엄마로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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