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면아이가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종일 관계에 있어 거리조절에 또다시 실패했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한 행동들, 아주 작은 증거들을 일반화시키고 확대시키고 작은 정보를 전부인 것처럼 인지적으로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치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더 이상 그들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도 같고 버려진 것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귀찮은가? 내가 또 귀찮은 존재가 되었으니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없는 존재처럼 있어야겠구나. 그런 생각마저도 든다. 참 이상하다. 생각의 방향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반복하고 있다.
나는 회피적 애착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주 괜찮은 상태로 살기는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피로가 쌓이고 긴장과 불안을 겪는 시기를 만나면 회피적 애착을 가진 모습들이 '나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었지롱' 약 올리는 듯이 나타난다.
내가 경험하는 마음을 솔직히 기록해 본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으니 나도 굳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느낀다.
네가 그 정도라면 나는 굳이 더 말하지 않겠다.
나 역시 더 애쓰거나 신경 쓰지 않을 테다.
실망스럽다.
찾아와 주면 반기긴 하겠지만 너에게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전형적인 회피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친밀감을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 친밀함이 무서워진 걸까. 이제는 도망가고, 버림받을 것 같기도 한 마음에, 내쳐질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먼발치로 거리를 둔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가 먼저 멀리 가버리는 편을 선택하는 관계에서 미숙한 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기를 그 어느 때보다 기다리고 있다.
내 안에서는 실은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긴밀하고 싶고,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거다.
그런데 표현할 줄을 모르고, 상대방에게 말을 할 줄도 모르면서,
알아차리게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마음과 정 반대되는 행동들을 한다.
또 이렇게 나의 패턴이 찾아왔다.
정확히 1년 전 비슷한 관계 경험을 했다. 아주 친밀하게 지냈던 언니에게 느꼈던 감정이 이와 유사했구나 무릎 치게 된다. 그녀는 편지에서 자신에게 질투를 했냐고 했지만 그건 정말 아닌 것 같고, 그게 아니라 나는 그 언니와 더 긴밀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었던 거다.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고, 나를 더 불러주면 좋겠고. 정말 심하게는 나에게 목매달리기를 바랐던 것 같다. 완전히 나에게 의존해 버려서 나의 쓸모를 그 사람으로 인해 경험하기를 바라는 상태였던 것 같다. 맙소사. 이제야 나의 모습이 알아차려지고, 이거였구나 싶으니 체증이 내려간다. 내 문제였고. 내가 시작이었구나. 알아차림과 동시에 밀려오는 슬픔과 아픔이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여러 가지 증상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친밀감 장애"라는 파트가 있다. 그 파트의 일부를 적어보면 이렇다.
"많은 성인아이들은 혼자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이 그들을 거절할까 두려워 외부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영원히 고립시켜 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자신이 속해 있는 파괴적인 집단을 떠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극단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진정한 자기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레드쇼, 47p
자기 자신이 사라진 삶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모습대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 "나"라는 사람의 경계가 없으므로 "타인"과 관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정서적인 경계선, 육체적인 경계선, 지적인 경계선, 영적인 경계선이 없다면 계속해서 상처받고 버림받았다 느끼며 또는 두려워서 도망가는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단단하게 해 나가야 하는 이유.
나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요소가 된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리고 타인의 행동이 문제가 아닌 그 태도를 받아들이는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를 탓하며 몰아세우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고, 더 관심받고 싶었고, 나를 더 필요로 하기를 바랐던 마음. 그런 마음이 좌절되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왔었고,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상실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위해 울고, 슬퍼하고 안아줘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