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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 헤아림 Oct 15. 2023

아이의 침대를 사려다가 인생이 미워졌다.

침대 프레임만 사기에도 허덕이는 내 삶에 분노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게 다 침대 때문이다. 

침대 값 하나에 삶을 비관하는 꼴이라니. 우습지만 또 서글프다.


아이들과 잠자리 분리를 준비하려고 했고, 겸사겸사 침대를 놓은 그럴싸 한 방으로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한국 엄마라면 아이 방 꾸며주기에 대한 막연한 로망쯤은 있지 않나.


오늘 어느 정도 방 꾸미기에 가닥을 잡고 싶어서 일ㄹ, 한ㅅ 가구들 매장을 딸들과 함께 찾아갔다. 딸들에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보라고 이야기하고서는 나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내 마음에 드는 깔끔한 디자인들, 넉넉한 공간. 보는 것마다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은 ‘이 가구들이 우리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약간의 비참함을 느꼈다.


 ‘참 예쁘네. 가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가질 수 없겠지.‘ 알아차려진 나의 마음에 눈물이 또 앞섰다.

‘어휴 주책이야.. 정말‘

서둘러 마음을 훔치고 아이들이 설렌 마음으로 둘러보고 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아이들이 예뻐하는 침대. 이게 마음에 들고 이렇게 저렇게 꾸미고 싶다고 말하는 딸들. 내 눈은 어떤 가구를 보든지 가격부터 보였다. 우리 형편에 살 만한 걸까. 그것부터 살피느라 바빴고 더불어 그 침대와 책상이 과연 방에 들어갈 수는 있나 생각하니 마음 한 곳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구경하자. 구경은 마음껏 해도 좋지. 너희는 마음껏 예쁜 내 방을 상상해도 된단다.’ 아이들 마저 나와 같은 고민에 상상하고 꿈꾸며 행복한 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과 동시에 내 머릿속은 돈 계산에 바쁘고 몇 개월을 할부로 사야 할지, 할부로 계산할 때 한 달 지출은 얼마큼이 늘어나게 되는 건지, 그걸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나는 어떻게 돈을 창출해 낼 것인지, 앞으로 이사 갈 집에서는 수용이 될 수는 있을지, 당장도 쉽지는 않겠구나... 등등. 수 없이 떠도는 걱정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 남편을 만났고 오늘 보았던 가구들에 대해 설명하고 챙겨 온 책자에서 가구들 크기를 확인했다. 줄자로 방 이리저리 길이를 쟀다. 오! 들어가겠네?! 여유공간은 없겠지만 꽉 들어차게 들어갈 것 같다고 판단이 내려지니 일단 약간의 희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가격을 설명하면서 137만 원이다 이야기하는데 남편이 아니라는 거다.


“응? 아니야, 내가 가서 보고 왔잖아. 매트리스랑 책상 구성 다 포함해서 137만 원이라고 쓰여있었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찍어온 사진을 보는데...

아. 내가 틀렸네. 내가 잘 못 봤구나.


침대 프레임만 137만 원이었다.

젠.... 장...


전체 구성이 137만 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찌어찌 재정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두 딸 모두 해주면 300만 원 정도면 되겠구나 여겼는데 말이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선 보고 온대로 구성을 맞춰 계산해 보니 230만 원 정도의 가격. 계산기에 눈을 맞추고 있던 시야가 흐려졌다. 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럼 그렇지. 세상 물정에 이렇게 눈이 어둡구나 내가. 두 명 다 해주면 500만 원. 우리 집에선 어려울 수 있겠다. 딸들에게 가구하나 제대로 못 사주다니. 500만 원은 엄마가 결혼할 때 혼수 장만하던 수준의 돈인데. 미안하다 얘들아.‘


‘그런데 세상이 참 불공평하네. 다들 참 쉽게 침대를 사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나는 뭔가 살 때마다 이렇게 힘겹고 어렵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 같을까. 또 돈 생각하다가 포기해야 하고 이러는 거야 정말 불공평하네.‘


차곡차곡 노력했더니 이렇게 잘 되었어요~라고 하는 돈에서 편안해진 사람들이 몇몇 스쳤고 배알이 꼬였다. 왜 내 인생만 그렇지 않은 것 같은 건지. 아주 찰나에 흐르는 눈물을 남편에게는 차마 들키기 미안해서 얼른 주방 가스레인지 앞으로 자리를 옮겨 분주하게 저녁 차릴 준비를 했다.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그 앞에서 무턱대고 눈물부터 나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그리고 이 눈물이 삶에 대한 분노에서 흐른다는 걸 알았다. 비참하고 슬펐다. 괴롭고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한심했다.


떡볶이를 휘휘 저으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내 삶에 분노하고 있구나. 나는 노력하는데 인생은 자꾸 나를 배신하네. 욕하고 싶은 X 같은 현실.... 아... 내가 내 인생 전체를 비관하며 잘못된 논리로 향하고 있네...‘

이렇게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도 약간은 버겁고 역겨웠다. 이런 알아차림 조차 필요 없는 가벼운 인생은 없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의 이런 상태로는 아이와 남편에게 이상한 화살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이런 슬픔에 대해 차마 말은 못 하면서, 괜히 다른 모습으로 시비 걸고 은근한 짜증으로 내 부정적인 분위기를 열심히 표출할 것이 틀림없는 나. 아이들에게도 맘 상한 나의 상태가 이상하고 건강하지 않게 표현할 순간이 만들어질 것이란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정말 줘야 할 사랑은 침대가 주는 아늑함, 자신의 방이 생겨서 주는 편안함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정말 주고 싶었고, 줘야 할 사랑은 엄마아빠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이고,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따뜻한 부모인데... 지금 벌어진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분명 아이들에게 흘러갈 미성숙한 나의 모습이 상처를 만들어 내고 긴장과 불안을 일으킬 것이란 게 더 싫었다.


서둘러 마음을 다독일 짧은 글을 끄적였다.




나의 이런 슬픔과 좌절의 자리. 분노하고 괴로워하며 넘어지고 엎어 쓰러진 에피소드들. 그 이유들이 때로는 하찮고 어이없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작고 사소한, 그러나 개인에게는 커다란 문제로 흔들리기 마련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만나게 될 돈의 문제가 앞으로도 산재하고 있을 테다. 돈의 문제가 인생 전체를 비관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가 보잘것 없어지는 것 같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게 또 “돈”인 것 같다. 돈 때문에 내 존재와 인생을 스스로 무시하게 되다니 용납하기 싫은 지점이다. 그렇지만 자꾸 내 발앞에 찾아와 귀찮게도 끊임없이 치인다.


이런 일을 또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남겨둔 이 기록이 나를 조금 더 빨리 일으켜 세우길 기대

해 본다. 그리고 다시 잘 일어난 오늘의 나에게 격려와 칭찬을 보낸다.


마음을 잡아 지켜낸 ‘나’

애썼고 고생했고 기특하다.




질문

당신은 어떤 순간에 무너지나요?

어떤 문제가 감히 내 존재에게 쓸모없다 말하게 하나요?

당신의 인생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다 말하기에 쉽고 가벼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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