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 헤아림 May 09. 2024

질투와 시기심을 느낄 때

괴로운 나를 돌봐야 한다.

내 안에 이렇게 무겁도록 들끓는 질투와 시기심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부러워하는 수준의 감정은 종종 느껴봤지만, 그런 감정을 넘어 질투와 시기심이 이렇게나 큰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이 낯설고 버겁다. 무엇보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못마땅하고, 내 마음이 이렇게 옹졸하고 형편없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듯 하다.


이 마음을 다루고 싶어서 습관대로 머리를 쓴다. 이성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하고, 이 마음의 원리를 알아야겠다는 노력을 시작한다. 시기심과 질투에 대한 책들을 찾고, 정신분석에서는 뭐라고 말하나 뒤적인다. 그러다 클라인이 이야기하는 시기심에 대한 글을 읽는다. 그런데도 시원하지 않다.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너가 그럴만하네'는 말을 들으면 괜찮아질까. 이런 감정에 허우적 거리는 내 모습이 참 오랜만이다. 


동생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떤 질투심을 느껴왔는지 돌이켜 보게 되고, 결국 질투와 시기심 건강하게 분리되지 못한 내적 미분화가 일으키는 증상들인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렇게 깨닫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게 없다. 결국은 내가 노력해야 하는 분량이 남아있다. 나를 더 책망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비교하지 않고 나는 존중하는 것, 내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을 같은 것으로 선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나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자기사랑. 여기에 노력이 필요하다니 참 이상하기도 하지.


질투를 멈추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질투하느라 괴로운 나에게 시선을 맞춰야 한다. 질투하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서 스스로를 더욱 궁지로 내몰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보통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자신을 못났다 여기면서 안그래도 마음이 아픈 자신을 더욱 괴롭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마음의 시선, 마음의 방향, 마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감정을 바꾸기가 어렵다.

질투와 시기심이 경험될 때, 그 감정으로 고통스러운 나를 마주보고 격려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줘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참 좋아. 사랑스럽지. 괜찮아, 너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충분하지"





시기심과 질투는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파괴하고 싶은 두가지 욕구를 함께 경험하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에 대해 대상관계이론가 중 클라인이 이야기한 시기심에 대한 연구가 흥미로워서 덧붙여 본다.


시기심은 자신에게 좋았던 내면의 대상을 파괴하고 싶은 감정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 자아는 약해지게 되고, 약해진 자아는 더욱 강한 시기심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 시기심은 특정 대상에게 투사된다고 한다. 다루지 못하는 시기심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대상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되는 듯 하다.


편집 - 분열적 자리에서의 시기심은 투사를 통해 불안이 더 커지게 되는데, 이는 내면에 좋은 대상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니 내면에 힘이 약해지고 불안을 극복하기 더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러면 불안은 더 자주 투사를 만들어내고 더 자주 시기심에 괴로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우울적 자리에서의 시기심은 죄책감을 가지게 하며 스스로를 박해하고, 절망감을 준다. 그리고 그 절망은 좌절로 인한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이런 좌절과 분노는 감사하는 감정이 생길 때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내 안에 좋은 대상들을 없애고 싶고, 생존에 위협을 경험하는 시기심.

불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질투와 시기심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질투하는 나를 만나고

시기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정말 어렵겠지만

일상의 감사들을 회복해보기도 다짐한다.

작가의 이전글 열렬한 성원이 없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