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취미에도 봄은 오는가
얼마 전 '가방 비우기 시간'을 가졌다. 쓰레기 수집병이 있는 내가 '가방이 쓰레기 통으로 보일 때'마다 한 번씩 가지는 시간이다.
가방 속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영수증. 뭘 그렇게 많이 샀는지 그 밖에도 길에서 받은 전단지, **, *** 등이 있다. (*표시는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밝히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또 '가방 비우기 시간'을 통해 한 움큼의 꼬깃꼬깃한 영수증을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는데,
넣어버렸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쓰레기통을 뒤져 영수증이란 영수증들은 다 펼쳐본 후에 찾아낸 두 장의 영수증.
영화 티켓이었다. 이미 몇 달 전에 본 영화의 티켓. 최근에 본 영화 티켓은 진작에 어디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갑자기-정말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듯2- 박스 하나가 생각났다. 의자를 밟고 책상을 밟고 올라서선, 책꽂이 위 먼지 쌓인 박스 속에서 또 다른 '박스 하나'를 끄집어냈다.
영화 티켓을 모으는 건 내 취미 중에 하나였다. 딱히 어떤 이유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이번엔 어떤 티켓일까?' 기대하는 것도 쏠쏠했다. 예쁜 디자인이면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라 하고 맘에 들지 않는 디자인이면 구리다고 친구와 킥킥거리면서.
티켓들은 직사각형 안에서 다 다른 시간과 활자를 품고 있었다. '이런 영화가 있었나?', '내가 이런 영화를 봤나?' 싶은 낯설고 어색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전히 빳빳하고 선명했다.
하나씩 찬찬히 넘겨 보는데 몇 년, 몇 월 며칠에 내가 이곳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었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없는 예전의 나와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영화 티켓이 영수증 형태로 바뀌고 보편화되면서 내 취미 하나도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처음 영수증 티켓을 받아보곤 신기해하며 모았지만 얼마 후 잉크가 다 날아가 텅 비어있는 맨들맨들한 영수증을 보고는 더 이상 모으지 않게 됐다.
이제는 묵직한 기억의 낱장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 한때는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주던 것이 꾸깃한 모양새로 다른 것들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게 된 지금이 새삼 서글프게 다가온다.
물론 방법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첫 번째, 대형 영화관들이 다시 예전의 종이 티켓을 사용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린다. 두 번째, 종이 티켓을 사용하는 영화관만 간다. 세 번째, 영수증 티켓의 잉크들이 날아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본다. 네 번째, 내가 영화관을 차려서 종이 티켓을 적극 사용한다.
때론 간편하고 편리한 것들이 소중함과 즐거움 또한 너무 쉽게 뺏어가는 것 같아 씁쓸한 요 며칠이었다.
_ 상상마당 시네마는 아직도 종이 티켓이라는 점! (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_ CGV의 포토티켓도 재미있긴 하지만 종이 티켓 고유의 느낌을 따라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