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Oct 27. 2016

1. 서울역


  짝꿍을 바꾸던 날의 설렘, 양자리를 찾아 한 주의 운세를 점쳐 보았던 것,  "니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라던 god오빠들의 외침. 모두 '자리'라는 단어가 내 기억 속에서 만들어놓은 장면들이다.


  요즘은 수많은 빌딩 안에 내 자리 하나 없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으면서도 아직은 내 얘기 같진 않은 이질감이 더해진, 이 단어를 굳이 꺼내 보는 건 내가 서울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떠나려는 사람들과 떠나온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치지만, 이곳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의 보금자리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한 뜻을 가지고 모여드는 곳.




  #1

  

  왜?

  매주 가득 차는 서울역 광장을 보고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헤치고 걷던 몇 번째의 날에서야, 외치는 구호와 조끼 뒷면에 저마다 다른 문구를 적어놓은 사람들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고, 아마도 그 무언가는 '자리'였다.

  




  #2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는 매번 다르다. 차가울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박스 하나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도 그들 사이를 지나갈 때에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곤 한다. 지하철 출구 가장자리, 나무 아래, 길 한쪽. 나는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는 곳들이 그들의 보금자리다.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엔 '추워'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후다닥 달려왔다.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우리 집과 내 방, 그리고 내가 하는 자리싸움이란 고작 지하철 좌석을 두고 벌어지는 눈치 게임.

  아직 책임질 것이 나 하나뿐인 게 다행인가 씁쓸하게 웃긴 생각과 함께 사진 속에 보이는 맨 발이 오늘따라 시리게 느껴지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어느 날이다.

  여전히 그곳에서 잠을 청할 사람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괜히 마음이 헛헛한 오늘,


  바람이 차다.   





    



매거진의 이전글 0. 우연은 택배 상자를 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