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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Feb 04. 2022

대학은 졸업했고 돈이나 벌어볼까

그토록 바라던 졸업을 한다. 이제 2월이면 그 길고 길었던 '학생'이라는 목줄이 잘려 나간다. 참으로 갈망했던 일인데 그다지 설레이진 않는다. 그 어떤 소속감도, 자신감도 없는 채로 대학 문을 쓸쓸히 홀로 걸어나가는 장면을 상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엊그제 공지가 내려왔다. 이번 2월 졸업식도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네 졸업식 따위는 없다는 사망선고다. '여지껏 고생했다'고 부모님께 작은 꽃다발 하나 건네받고 싶은 꿈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곧 다가올 설을 기념하여 어제는 본가에 내려왔다. 본가에 내려와서 12시간을 내리 잤다. 자고, 또 자고, 또 자고 ... 그렇게 내리 자다 보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 문득 떠올려보니 참 이상한 꿈을 꿨다.


꿈 속에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어야 했는데!!!!"라며 절규하는 내가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곱씹어보면 책 한 권 꼬옥 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요즘은 '꿈'에 대해 강연을 하는 작자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꿈이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하고 싶은 무언가'라고. 그렇게 치면 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싶은데 ... 툴툴거렸지만 사실 오래도록 갈망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인생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

이를 위해선 마치 독수리가 제 발톱으로 먹이를 콱 잡아채는 것처럼 

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어야하고,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민첩해야만 한다.




참으로 나태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오늘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몇 글자라도 적는 이유가 있다. 하나뿐인 할머니께 교통사고가 났다.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자가 우리 할머니를 치고 갔다. 엊그제 떡국을 끓여주고,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며 당부하던 할머니가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다.


바쁜 대학생활 속에서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삶이란 이렇게 가냘픈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늘 우리 곁에서 장난질을 치며 희롱하고 있다. 아무런 힘도 돈도 없는 대학생 나부랭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 사람이 단 하루만이라도 오토바이를 조심하진 않을까.


요즘은 대학은 졸업했고, 돈이나 벌어볼까 궁리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에 돈 따위 인생에서 뭣도 아니라는 반항심이 부풀었다. 어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화나 한 통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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