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생인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5년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있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학교 복도에 각 반마다 구식 컴퓨터 1대씩이 놓여있긴 했지만, 보통은 인강용이었으며 점심시간이나 쉬는시간에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나 다같이 들어가 구경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0살, 대학교에 입학하니 갑자기 인스타그램이 유행했고 그해쯤 다들 페이스북을 탈퇴하고 인스타그램으로들 넘어갔다. 이유라고 하면, 엄마 아빠와 어른들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 그즈음 우리는 페이스북을 가입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 연락도 안 하는 과거 선생님들, 1년에 1번도 볼까 말까한 친척들까지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 끊자니 애매하고, 계속 두자니 자유롭게 글을 올리기 뻘쭘하다고 느낀 그때 인스타가 시장에 나왔던 거다.
그러한 분위기를 따라 나도 대학교 1학년 때는 인스타그램을 깔았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얘 때문에 내 현생을 다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인스타그램 감성에 맞춰서 사진을 찍어야 했고, 집에 오면 베스트컷을 골라야 했고, 또 나름대로 보정도 해야 했으니까. 현실을 느낀 그대로가 아니라 가공하여 어떻게든 아득바득 '좋아 보이게' 만드는 행위 자체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땐 다들 애인이 생기면 본인을 인스타에 올리니 마느니로 싸우던 때였고, 그래서인지 지금은 대체로 열기가 식은 럽스타그램이 그렇게도 판을 쳤다.
그러다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좋아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은 뒤 나는 인스타그램을 관뒀다. 당시 한 지인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지도 않으면서 좋아요를 자동반사적으로 누르는 것을 본 것이 계기였다. 아, 저 가벼운 좋아요를 받기 위해 내 묵직한 인생의 한 조각을 잘라 조공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한 뒤, 계정까지 싹 다 없애 버렸던 계기도 또 따로 있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싸울 때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내렸고, 또 사이 좋을 때는 게시물을 올려달라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런 걸로 내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졌고, 1년 넘게 꾸리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아예 죽여버렸다.
다들 인스타를 할 때, 계정도 없던 나는 3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기간이 길어지니 그런 게 존재했는지조차 생각이 안 났고, 어떤 SNS도 하지 않으니 현생을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구에서 주관하는 창업 교육을 들으며, 인스타그램 수업을 들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다시 인스타그램을 깔기로 했다. 이유는, 지난 3년 사이에 SNS가 없으면 마치 이 세상에서도 영향력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살 때, 어떤 대외활동을 하려고 해도 전부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URL를 받는 걸 보며 이딴 걸 왜 받냐고 억울해 했었는데. 24살인 지금 세상은 365일 학생부 종합전형처럼, 네 인생을 정량화하진 않을 테니 정성적인 성과를 쌓아 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떤 경험을 했고 뭘 느꼈든 기록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사람들이 반응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는 딴따라라고 무시받던 댄서들이나, 야시꾸리한 옷만 입는다고 눈총받던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바뀐 세상이 오히려 인기를 갖다 주는 매개체가 되긴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것들은 남고, 긴 시간을 들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