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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May 17. 2022

가게만 3개에 주말엔 DJ가 되는 사장님

채널을 시작해야지, 하고 가장 클릭한 것은 당근마켓이었다. 결코 나 혼자 운영할 수 있는 채널이 아니기에, 일단 어떤 사장님이든 만나야 했다. 어떤 경로로 그분들과 연락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일 쓰고 있던 당근마켓 어플이 떠올랐다. 참고로 난 당근마켓 온도 "60도"를 자랑하는 당근 매니아다. 


당근마켓을 통한 가게 홍보는 최근에서야 떠오른 광고 방법이다. 그것이 고작 중고거래 어플이 아니라 우리동네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순간, 먼저 들어온 놈이 그 많은 당근마켓 이용자들에게 자기소개 할 기회를 꿰차게 됐다. 비교적 젊은 사장님들의 가게부터, 차례대로 당근마켓에 들어와 자신의 가게를 맛집이라고 등록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유튜브에 영상 하나도 없으면서 채널 소개, 앞으로의 포부를 담아 당근마켓에 등록된 가게 사장님들께 나름의 이력서를 돌렸다. 까일까봐 두렵지 않았다. 99명에게 까여도 1명의 사장님만 만날 수 있다면 전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 당근을 붙잡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긍정의 답장이 왔다.


"유튜브요? 재밌겠네요, 시간 되실 때 오늘 가게 한 번 와보세요"




회기에 있는 푸드스토리라는 가게였다. 회기에 5년을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30년을 장사하셨다는데, 외관이 술집처럼 생겨서 술집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나보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연락드린 유튜버에요" 하니 혼자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는 핑크 머리 여사장님이 보였다. 방울토마토를 맛있게도 드시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드세요"하며 내주셨다. 수다스럽고 발랄한 느낌,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매-우 밝은 사람의 유형이었다.


사장님은 부모님께서 30년동안 해오신 백반 가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 발길이 끊겨 발을 동동 구르게 되셨단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백반의 식재료를 살려 '도시락'을 팔아볼까, 하고서는 최근에서야 고급 도시락을 시작하셨다. 하나 만드는 데에만 4시간이 걸리는 ... 이름하여 상호명도 "정성도시락"이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도시락의 느낌을 살리고 싶으셨다는데, 먹어보니 일본 도시락보다 훨씬 나았다. 일본 도시락은 밥 양이 굉장히 많고, 그래서 반찬의 간을 달고 짜게 만드는 편이다. 그러나 정성도시락의 주메뉴는 거의 매일 바꾸신다고 하고,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시키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계셨다.




오전에는 도시락집, 오후부터는 백반집, 저녁에는 술집으로 바꾸어 2층짜리 가게를 빈틈없이 운영하신다. 가족 3명이서 그 모든 것들을 담당하려면 몸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인데, 들어보니 이 사장님 취미가 엄청나게 많다. 일단 눈에 띄던 것은 "유튜버 조명", 인스타 팔로우를 해보니 노홍철 뺨치게 어이없으면서도 시끄럽고 웃긴 릴스와 영상들을 업로드 하고 계셨다. 그 재능을 살려 유튜브도 하시고 ...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을지로에서 디제잉을 한다며, 나에게 구경오라 하신다. 디제잉 ... 그런 거 대학축제에서나 몇 번 봤지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기에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유튜브 인트로로 쓰겠다는 명분으로. 실제로 그 주 주말, 친구와 함께 을지로 '감각의 제국'이라는 곳을 찾아가 사장님께서 디제잉하시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디제잉도 디제잉이지만, 그 펍은 마치 제3세계에 온 것처럼 요상하고 희한한 것들만 모아놓은 "이게 여기서 왜 나와?"의 모음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기는 베이킹도 한단다. 베이킹한 사진들을 보니 실력이 수준급이다. 아직은 지인들에게만 알음알음 팔고 계신다는데, 베이커리로 사업자를 안 내서 정식 판매가 어려운 것 같다. 아마 조만간 '저 드디어 빵집도 열었어요 구경와요~' 하는 사장님의 카톡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더 나아가... 지금 자기의 꿈은 "ECU"라는 예술인 기획사를 차리는 것이시란다. 사람들은 원래 다 개성이 뚜렷하고, 그렇게 자기마다 색깔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벌써 로고 작업도 하고 있고, 이 로고가 완성되면 문신으로 몸에도 새길 것이라는데 왜인지 꽤나 멋있게 느껴진다. 꿈을 마음에 이어 몸에도 새기는 그 작업이. 




첫 촬영이 끝나고, 엊그제는 사장님께서 그 '예술인 후보'들을 다 모아놓고 파티를 여셨다. 물론 나도 초대됐다. 건축가, 디제이, 영상편집자, 카페 사장님, 댄서, 래퍼 등 ... 공통점이라곤 없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그 진귀한 재주는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여 술 없는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익숙치 않았으나, 곧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 왜인지 또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사람들 ...


그 자리에서 다 먹으라고 만들어주신 음식들도 참 푸짐했다. 그중에 정말 맛있었던 메뉴는 타코야끼 ... 문어가 아닌 다른 재료를 넣어 만드신 것인데, 혹시 이 다음에 프랜차이즈라도 하나 차리실까 싶어 글에는 쓰지 않도록 하겠다. 훗날 그 타코야끼가 전국에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문어 없는 타코야끼를 즐기고 있는 세상이 왔으면 ...


어떤 인연으로 이 사장님을 첫 번째 타자로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스타트가 좋았다. 또 이 여자를 보고 있으니 어째 ... 내 삶도, 참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꿈 잃은 철든 양들 사이, 아직 많은 꿈을 붙들고 있는 32살.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철없어 보이는 그 해맑은 꿈부자의 미소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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