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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Jun 02. 2022

엄마 아빠한테 전화 오는 게 싫다

우리 아빠는 오후 5시만 되면 전화를 한다. 자기 퇴근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년, 고시 준비를 할 때는 워낙 하루종일 혼자 있다 보니 반나절동안 한 마디도 안 할 때도 많았다. 가끔 힘이 부칠 땐 아빠 전화를 받고 힘을 얻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를 미친듯이 받다보면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 아빠 전화를 일부러 안 받는 날도 많았다. 


그땐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 당시에 쓴 블로그 글들을 보면 내가 아닌 것만 같고. 일 년동안 동네를 벗어난 날이라곤 추석 때 딱 하루, 창경궁 근처에서 회를 사먹고 산책을 갔던 것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4시간 정도 놀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공부를 했다. 하루가 24시간이면 1시간은 무조건 운동을 했고, 11시간 이상은 무조건 공부를 했다. 공부할 때마다 유튜브에서 장작나무 1시간짜리를 틀고 반복했던 탓에, 아직까지도 집중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장작나무 타는 소리를 찾아 들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왜인지 굉장히 불안하다.


고작 1년이었지만, 하루 하루를 지옥으로 사는 1년은 지독하게 길었다. 그리고 11월 27일, 임용고시 시험을 칠 때는 손가락에 잠시 마비가 올 정도로 정말 열심히 답안지를 적어 나갔다. 1교시도, 2교시도, 3교시도 나름 예상했던 대로 나왔고 점수도 예상대로였다. 탈락이었다. 


첫 번째 임용고시를 치고 시험장을 나서는 내 감정은 "뿌듯함"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는 "안도감"과, 결국 이럴 거였다면 1년동안 고시는 왜 미친듯이 준비한 거냐는 "허탈감". 이 두 가지에 시달리며 나는 시험 이후 한 달동안 그 어떤 활자도 읽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지 반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에 줄줄 읊었던 국어교육개론서의 내용을 말해보라면 속사포 랩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 하나에 미치기에 1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세로 다른 거에 도전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는 고시낭인은 그만두기로 했다.


임용고시 시험을 끝내고 나에게 생긴 부작용 중 첫번째,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은 죄다 버리거나 나눔해 버리게 되었다. 그땐 머릿속에 필요한 지식들 말고 다른 것들은 죄다 내보내야만 했다. 매달 찾아오는 친구들 생일이라던가, 심심하면 카톡에 뜨는 온갖 상업 광고 문구 같은 거. 스치기만 해도 나에게 '정보'를 주는 것들은 모두 삭제해야만 했다. 머릿속에는 시험과 관련된 지식들 말고 단 1퍼센트의 잡것들도 포함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걸 1년을 반복하고 시험을 마치니 정말 원래의 '나'는 온데간데 없고 낯선 '나', 바라지 않았던 '나'가 되어 있었다.


원래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잘 지내던, 정말 무던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 이제는 시간 날 때마다 물건들의 위치를 정돈하고, 내가 그리는 장소에 내가 바라는 물건이 있지 않으면 속에서부터 약간의 불안감이 차오른다. 사람들이 공부하기 전에 꼭 청소부터 한다고 하던가? 난 원래 책상이 난장판이어도 잘만 공부하던 사람이었는데, 나 역시 이제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꼭 물티슈부터 꺼낸다.


부작용 중 두번째, 친구와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고시 준비할 때는 친구, 가족들과 정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멀리 떨어져서 지냈다. 전화는 상시 무음이었고 SNS는 카톡까지 포함해서 싹 다 지웠었다. 어제도 혼자, 내일도 혼자, 혼자 지쳤다가 혼자 챙기고, 혼자 꾸역꾸역 나아가는 생활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그 누구도 나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바라며 내 아픈 고통을 나누거나 기대지 않게 되었다. 


이 부작용 역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데, 그래서인지 한 달에 친구를 만나는 날은 많아야 1~2번인 것 같다. 또래 친구들과 만나면 다들 자기 힘든 얘기라서, 위로하다가 시간이 그냥 다 가버린다. 스펙 쌓기 힘들고, 시험 준비 힘들고, 취업이 안 되어서 힘들고, 상사가 싫어서 힘들고. 20살 때부터 그랬는데 24살까지 그 소리를 반복하고 서로 위로만 주고 받다보니 더 이상 나눌 대화거리가 없다는 생각만 든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엊그제는 인스타그램에서 애매하게 친했던 사람, 애매하게 멀어진 사람이 추천 친구로 뜨길래 전부 차단시켜 버렸다. 무언가 내가 꾸역꾸역 해서 잘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내가 이것 저것 노력하고 있는 과정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달까. 아님 자기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그게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논평당하고 싶지 않달까.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시간 되니 걸려온 아빠의 전화. 이제는 요즘 뭐하고 있냐는 질문에 '이것저것 하고 있어. 근데 진짜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 뭘 정확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어'라고 대답했다. 엄마 아빠는 취업 생각은 안 하고. 유튜브나 쇼호스트 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가 나아가겠다는 말에 어리둥절해 하신다. 하루 걸러 하루 "요즘 뭐하고 있냐" 물어보는 질문이 의도는 알겠지만 이젠 좀 그만 듣고 싶다. 


일 년 전에도,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미친듯이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 뚜렷한 '무언가'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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