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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Feb 14. 2022

졸업장 병에 걸린 졸업장 공장

어느 날 대학 문이 닫혔다. 캠퍼스는 가드라인에 둘러싸였다. 풀숲과 그 중심에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맥주 캔을 부딪히던 청춘들. 그들은 서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뿔뿔히 흩어졌다. 이젠 지하철 대신 마우스가 캠퍼스를 향한 이동수단이 되었다.


대학이 서둘러 개업한 것은 온라인 캠퍼스였다. 학교도, 교수도, 학생도 누구 하나 전문가가 없었다. 출석을 부르는 데만 20분을 쓰는 노교수들은, 학생들이 화면을 켜지 않는다며 분노하였지만 이제 모든 건 기록될 수 있다. 따라서 참아야 했다.     


하루는 한 여교수에게 메일이 왔다. 자신의 강의 피피티를 블로그에 올렸냐는 물음이 주였다. 그동안 성실히 배워보자며 블로그에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아차,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실수했습니다. 확인하자마자 제 블로그에서 글은 다 비공개로 바꿨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던 의도였고 수업 자료를 퍼뜨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너그러운 용서를 기원하였지만 예상외였다. 확인 후 연락 준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정작 메시지가 온 건 학과장 교수님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었다며 학교로 방문하라 하셨다.     


마음을 졸이며 학과장님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학과장님도 난처한 눈치였다. 들어보니, 나와 갈등을 빚은 교수는 어떻게든 나를 처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생, 혹시 블로그 운영하고 있나요? 수업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라던 교수는, 우연찮게 내 블로그를 보았고, 내가 글을 내리기 전에 모든 증거를 캡쳐했다. 그리곤 그걸 학과장에게 넘겼다. 명명백백한 강의 유출의 증거가 바로 여기 있다고. 꼭 어떻게든 처벌을 해야 한다며.     


학과장님은 나를 보호하려 노력해 주셨다. “이 학생, 그래도 성실하게 학교생활하고 성적도 좋은 친구입니다. 똑똑한 친군데 실수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 주시죠.”      


하지만 여교수는 달랐다. “아니요. 분명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어요. 아주 체계적으로 강의자료를 올리고 있었어요. 봐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여교수가 강경하게 나오니, 학과장도 어쩔 수 없이 나를 학교에 부른 것이다. 이후 여교수에게 연락이 온다면, 학과장 자신에게 혼이 많이 났다고 말하라 하시면서...


“여기서 해결을 못 하면 네가 처벌받게 돼. 아직 온라인 수업을 한 지가 얼마 안 되어 관련 학칙도 없고, 그래서 학교 내 처벌이 안 돼. 이 말의 뜻은 그 여교수가 작정만 하면 너가 민형사 소송을 하게 된다는 거야. 그럼 학과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그 날 그렇게 사랑하던 대학 정문을 나서며, 처음으로 대학교수들의 쓸모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래. 이 사건은 명백히 나의 잘못이다. 그러나 교수는 학생의 부족함에 대해 연민하고, 너그럽게 혜안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면서.      


날이 지나도 여교수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학과 내 다른 교수에게도 내 험담을 하고 다니면서 그 분노를 풀었다. “걔 되게 이상한 애더라고요.”로 시작되는 이모저모... 그러나 학과 교수님들도 알고 계셨다. 교수가 뒤에서 학생을 욕하는 건, 어딘가 조금은 요상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사과 전화를 드렸고, 것도 모자라 자필사과문까지 썼지만서도 별 효과는 없었다. 결국 그 사건의 책임은 내 학점이 졌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내 쪽에서도 민형사상 소송으로 인생에 오점을 갖는 것보단 나았다. 대학교수의 재량대로 쥐락펴락되는 평가 시스템이야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1년 반이 흘렀고, 모든 걸 잊었었다. 그러다 흥미로운 논문을 봤다. 평소 좋아하던 영화에 대한 분석 논문이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이거, 그 여교수의 강의자료랑 너무 똑같은데?’     


그랬다. 그 여교수는 다른 저자가 쓴 논문을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수업 자료로 썼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강조했던 “저작물에 대한 권리”도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소유였다. 그녀의 수업 내용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스웠다. 동시에 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풀린 느낌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노했던 것은, 자신의 과오가 세상에 드러날까 겁이 나서였다. 그 여교수는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대학에서, 같은 강의를 하며 돈을 벌고 있던 비정규직 강사였다. 그녀의 강의자료가 표절임이 세상에 밝혀진다면 꽤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한 학생의 독백 따위에 관심도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추가로 요즘 대학에서는 졸업논문 쓰는 데 지도교수조차 배정하지 않고 있다. 지도교수를 배정하는 것도 일이고, 지도교수를 배정해 학생의 논문에 첨언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사회학자 도어는 우리 사회에 ‘졸업장 병’이라는 고질병이 생겼음을 시사한 바 있다. 더불어 데이비드 F. 노블은 대학을 ‘졸업장 공장’이라 칭했다. 누가 썼는지도 모를 졸업논문을, 온라인으로 제출하기만 하면 졸업이 승인되는 희한한 세상이 왔다. 그 희한한 세상이 양성하는 학생 위에는, 다른 작자가 피땀 흘려 만든 논문을 베껴 마치 자기 것처럼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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