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저는 아르바이트만 하면 1달 딱 채우고 그만두게 됩니다.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한 달만에 뭐든 뚝딱 해내는 로봇을 바라는 것만 같기도 하고, 제가 영 일머리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갓 20살이 되었을 때, 그야말로 고등학교 졸업장도 안 나왔을 때는 맥주와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에서 첫 알바를 했습니다. 한 달쯤 일하면 60만원 정도를 받는 일이었는데, 60만원이나 되는 돈이 제 손에 들어온다는 기쁨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일했었죠.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그때는 유튜브가 크지 않아서 마감 일은 힘들다는 소리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었어요.
근데 참 이상한 일이 계속 생겼습니다. 어떤 날은 일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 두 분이 계신 테이블에서 저를 부르더군요.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을 같이 마시잡니다. 그걸 지켜보던 저희 점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 채 저 멀리서 지켜만 보시고 있었어요.
그리고 좀 지나자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7살이나 많은 27살짜리 오빠가 갑자기 치킨을 사준다며 저를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백을 하더군요. 3년이나 사귄 여자친구가 있던 분이었습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싶다는 소리를 참 고급스럽게 표현하시더군요.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고마운 일자리었습니다.
두번째 아르바이트는 서울 중심지에 있는 이자까야 '청담'이었습니다. 유명하고 나름 고급 이자까야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저렴한 값에 들여와 하루종일 주방에서 굴렸습니다. 우리나라 말이라곤 몇 마디 알지도 못한 채,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던 필리핀 남자아이의 크고 순진한 눈망울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값비싼 케이크들을 포장해 들고와 생일파티를 하던 고급진 여자분들도 많았습니다. 금가루라도 발라놓은 것 같은 화려한 케이크들을, 사진 몇 번 찍고 몇 조각 먹더니 싹 다 남기고 가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누군가는 저렇게 쉽게 버리는 돈들을, 저는 어떻게든 주워 담기 위해서 애쓰는 꼴이 딱 영화 <기생충>의 빈부격차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은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분이 좀 더 어려 보이는 여자분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아차, 놓고 가신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어요. 와이프로 저장된 그녀에게 저는 "방금 남자분이랑 같이 나가셨죠? 휴대폰 가게에 있어요."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러자 와이프인 그녀는, "그곳이 어디냐?"고 되물었습니다. 남자의 바람이 저로 인해 들키게 되었지만, 다행히 휴대폰은 찾아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와이프되시는 분이 가게로 직접 찾아와 그 남자의 휴대폰을 들고 가셨어요.
그 가게에서 한 달쯤 일하다가 사장님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게, 간단하잖아?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대가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 남자 알바만 쓰다가 여자 알바를 쓰니, 저에게 힘든 일들을 못 시켜서 그만두기를 권고하는 말이었습니다. 술박스를 나르는 일은, 제가 해내보자며 당장 거뜬히 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만두기로 했지요.
세번째 아르바이트는 떡볶이 집이었습니다. 이전에 알바는 3년동안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었다며 저에게 일이 아주 쉬울 거라고 하셨지요. 떡볶이를 만들고 순대를 썰고, 처음에는 나름대로 재밌었습니다. 그러나 일하러 온 자기 아들은 저 멀리 의자에서 내내 쉬고 있고, 5시간 동안 일한 제가 잠시 의자에 앉아서 쉬려고 하니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일이 그렇게 힘드니? 그렇게 앉고 싶으니?"
그날 알바를 마치고 아빠와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하고 끊은 뒤, 아주 펑펑 울었습니다. 원래 요식업 종사자이신 저희 아버지는, 요식업이라는 게 원래 텃세가 있다며 원래 돈 버는 게 그렇게 힘들다며 허허 웃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아르바이트 경험 이후로 저는 영원히 요식업 알바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20년 평생 공부만 하다가, 갑자기 주방에서 뚝딱거리려고 하니 잘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그땐 뭔가 내가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었나 봅니다.
그리고 네번째 아르바이트는 대학 졸업 이후 시작해, 최근 한 달 사이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겨우 한 달을 넘겼습니다. 정말 지겹지만 이번에도 또 제 실수겠지요. 주중알바 한 분께서 단체톡으로 '주말 알바분들 이건 왜 안 하셨고, 저건 왜 안 하셨냐?' 하셔서 사과를 하니, 그걸로는 분이 안 풀리셨나 봅니다. 무언의 메세지들을 마구 보내더니 결국은
"빡치시면 단톡 나가시고 계속 여기서 일하실 거면 더 사과하세요."
한 마디가 저를 또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제 잘한 것만 기억하고 잘못한 건 다 잊어버린다고 하죠. 저도 이게 저만의 망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 가면 이것보다 훨씬 더하다지요? 그래서 제 꿈은 회사에 가지 않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