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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Feb 20. 2022

너도 나도 우리는 다 고독한 우주의 유일한 별빛이다


이제 매일 아침 일어나 가야할 곳따위 없다. 어떤 소속도 없고, 어떤 책임도 없다. 그런 삶이 시작되었다. 어떤 삶이냐고? 백수의 삶이다.


없는 것들을 더 말하자면 노래 한 곡을 지을 수도 있겠다. 곁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다.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으며,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다. 그러나 없고, 없고, 또 없지만서도 없지 않고자 노력하는 한 가지는 있다.


'믿음'. 지금의 '없는 삶'은 훌훌 지나가고 언젠가는 뭐라도 좀 '있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나는 분명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말이다.




다음주는 대학 졸업식이다. 학교에서는 거뭇 밋밋한 학위복, 학사모를 빌려준다. 그게 졸업식의 전부다. 우리 아버지는 서울로 대학을 간 딸이 학사모 쓰는 모습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셨다. 먹고 살기 바빠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도, 중학교 졸업식도, 고등학교 졸업식도 한 번 와보지 못한 그였다.


'나중에'

나중에 좀 여유가 있으면 가야지.


그런데 없는 삶으로 태어나, 있는 삶으로 가는 행로는 참으로 길었다. 그렇게 나이 환갑이 되어, 막내 딸 졸업식에 가보려니 이젠 졸업식 자체를 하지 않는단다. 괜스레 지난 날들을 무엇을 위해 달려왔나, 착잡해진다.


어머니는 지난 2월, 나에게 취직운이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타로 카드를 보니 정말 그랬다. 타로 카드 속의 나는 푸르른 월계수 왕관을 쓰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어 동전을 받고 있었다. 따박 따박 돈이 들어온다는 의미라 했다. 지난 길은 버리고, 새로운 나의 길을 잘 찾아 가게된다면서.


난 그럴수록 더더욱 정성들여 자소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인턴 지원인데 쫄지 말자, 누구보다 씩씩하자. 그러나 두 손 두 발 휘저으며 씩씩하려 노력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음 행보가 없을 때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지. 분명 나의 길일 거라고 가슴 벅차게 기대한 회사에는 나 하나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소현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기다렸던 그 메일의 첫 문장을 보고는, 드디어 사회로 나가는 첫 문이 열리는구나 싶어 목청껏 소리지를 준비를 했다.


"당신의 이력, 그리고 실무 면접 때 보여주셨던 열정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 채용중인 인턴으로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이래서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역접이 들어간 문장은 특히 조심하도록!


이렇다시피 '하이'하기 전에 벌써 '굿바이' 인사부터 배웠다. 대학에서는 이런 걸 가르쳐 준 적이 없었는데, 분명 세상에는 나라는 사람이 필요한 곳이 차고 넘칠 거라고 했었지?


그리고 곧 도착한 두 번째 회사의 메일,


"보내 주신 이력서는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저희와 함께 하시기 어려움을 무거운 마음으로 알려 드립니다."


나라는 성을 지키는 성벽이 몇 개쯤 있을까. 몇 개쯤 부숴지면 성이 몰락할까? 나만의 성 안에서 살 때는, 내가 가꾼 성의 모든 것이 아릅답고 꽤 그럴싸해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나 보다. 그들이 '꼼꼼히' 읽고, 나의 성은 별 볼 일 없다고 그냥 지나치기로 한 이유는 뭘까?


그러나 나는 믿음이라는 기둥을 또 하나 세운다. 이번엔 두 개가 무너졌으니, 다시 두 개를 세우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지나쳐도,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나만큼은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고.




어느 작가가 그랬던가? 너도 나도 우리는 다 고독한 우주의 유일한 별빛이다. 그래. 오늘의 나는 고독하더라도, 오늘의 나는 유일하다. 오늘의 나도 별이다. 한 줄기의 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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