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사고법 넷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아이들을 태우고 초행길을 운전할 때가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분명 켜져 있는데 길을 잘못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사랑스런 그녀들은 서늘한 눈빛으로 운전자 리뷰를 시작합니다. “아니, 아까 거기서 왜 이쪽으로 왔어? 네비 말 못들었어?” 말은 짧은데 여운은 깁니다. 식은 땀이 납니다. 인터체인지마다 그렇게 시험을 봅니다.
하지만 네비 속 그녀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상냥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저보다 침착하고, 나의 그녀들보다 감정 기복이 적습니다. 네비 속 그녀는 누가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이미 길이 틀어졌다면 지금 가장 빠른 다음 길을 찾을 뿐입니다.
사람은 다릅니다. 길을 잘못 들면 자꾸 방금 전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랬지, 아까 왜 안 꺾었지, 내가 그렇지 뭐... 실수 하나를 붙잡고 감정까지 얹습니다. 길보다 기분이 먼저 꼬입니다. 일도 비슷합니다. 보고서 방향이 틀어지고, 사람을 잘못 만나고, 판단이 늦고, 선택이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우리는 현재보다 과거를 더 붙잡습니다. 왜 틀렸는지 따지느라 갈 길을 못갑니다. 물론 점검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 오래 서 있으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실수는 돌아보면 되고, 당장 경로를 재탐색하고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엔지니어는 틀어진 조건 앞에서 주저앉기보다 다른 계산법을 찾습니다. 지금의 위치를 보고, 가장 현실적인 다음 길을 찾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안 틀리는 일이 아니라 틀어진 뒤에도 다시 길을 찾는 마음입니다. 네비 속 그녀가 가르쳐주는 것도 사실 그거 아닐까요. 길을 잘못 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다시 길을 찾는 일이라고.
그래서 저는 뭔가 어긋난 날이면 저를 혼내기보다 이렇게 묻기로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어디로 다시 가면 되는가' 살다보면 길을 잘못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경로를 재탐색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