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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홀 Aug 05. 2021

자신의 중심에서 타인을 외치다

타인 사랑하기 프로젝트: 나에겐 빡빡하게, 너에겐 넉넉하게

자기중심성은 인간의 내질적인 본성으로서 이를 벗어난다는 것은 진심과 격리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기중심성을 이기주의라고 단적으로 치부할 수는 없으며 이를 잘 가꾸어 자기가치를 발견하고 자기실현을 이루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유의미한 행위이다. 그러나 오용되거나 과용될 경우 잔뜩 가시를 곧추세우고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위한 존재로 둔갑하게 된다. 이래서는 가치 충돌이 일어나는 날이면 진실성과 합리성에는 눈을 돌린 채 부정을 위한 부정이 판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사회가 통용하는 가치는 대개 이기주의와는 멀게 여겨지는데 이는 단지 사회 규범과 윤리의 부분이다. 냉정하고 냉철하게 판단이 가능한 현실에서의 은밀하고 암묵적인 집단 통념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과 생존, 그리고 이 진화론적이고 일차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사회와 현실사회의 괴리가 일궈낸 모순 구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무한 경쟁의 궤도를 탈선하는 것은 자기 손해를 감내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와 인권친화적인 세계는 차차 그 개념이 실천적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그 안에 무고한 시민들의 씨앗이 거침없지만 오래도록 뿌려졌다. 그리고 인간 존엄 사회의 발전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기에 앞으로도 이기성 탈피를 위한 씨앗이 여기저기 뿌려져야만 한다.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일부 뿐이고, 그나마의 허위는 표리부동한 이들의 위선적인 행태이기의 그닥 실속도 가치도 없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온당한 가치를 추구하듯 보였던 이들도 최대의 위협과 겁박 상황이 당도하면 가치를 외면한 채 배신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선을 강조하는 직결적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기에 혹독한 위기도 견뎌낼 만한 가치중심적 사고와 결단이 없다면 더더욱 주의하고 반복적으로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의 자기중심성이 이기심으로 바뀌는가 아닌가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은 자신의 권리피해가 수용범위를 넘어서는 순간에 직면하는 것이다. 특히나 스토아주의적으로 바라볼 때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감정을 만나게 되면 자주 그런 일들이 발현된다. 흔히 '뒷골이 땡긴다'라는 표현이 이를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자기를 구심점으로 지향하는 선택들은 자연상태에서는 너무도 간단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선택은 사회 구조 속에서 경시되기도 하며, 이러한 연유로 현대 사회에서 '자아 찾기' 담론이 자주 형성되었다. 그래서 사실 최우선적으로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타자중심의 삶을 도울 수 있는데 이는 지극한 개인들의 응집적 연대로 발전시킬 수 있을테다. 개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타자 환대의 길을 위해 '나'를 구심점으로 하는 작은 세계관을 초월하여 다양한 객체들의 우주로 향하는 다초점적인 행위들을 자아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이고 회의적인 자아가 열심히 의지적으로 일해야만 달성가능한 목표가 될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생애는 미생의 성격을 띄고 있고, 완생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 뜻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중립 혹은 이들과의 분립으로서의 현재는 고여있는 우물처럼 부패하기 쉽기에, 과거를 반영하여 미래를 진취적으로 경작하는 현재를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 완생이라는 착각 속에서, 또는 자신이 곧 규범이라는 틀에 갇힌 삶으로 멈춰있다. 나를 포함한 '나'들은 비사유적 존재로서의 허물을 벗고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여러 '너'들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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