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묵은 감각을 더듬다 보니 회상의 갈고리에 걸려든 것은 후각과 관련된 기록이었다. 애잔함 섞인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흐뭇한 손길로 다듬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안위이자 행복인지.
여행. 두 글자만으로도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 깊은 행위, 혹은 언어, 또는 관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는 사실적이기보다 상상의 상태로 존재할 때가 태반이다. 하고 싶지만 바쁜 이. 하고 싶지만 게으른 이. 하고 싶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이.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판단의 기술이 없던 시기, 우리 가정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이의 부류였음을 지각하지도 못했다.(-이에 관한 주관적 기준이 못마땅한 이들에게 용서받기를). 판단을 못할 뿐이지 가난한 생활이 고운 가루가 되어 모든 언행에 스며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이날을 기다리지 않는 어린이, 산타를 믿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대하지 않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객관성을 부여해줄 만큼 그 생활에 익숙하여서 딱히 불편함을 몰랐다. 그랬기에 '여행'이 행위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어도(-인식조차 못했을지도) 나날이 부드러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행을 행위하다
초등학교에서 나름 농익은 학년이 되어가던 어느 여름이었다. 수학공식 못지않은 '여름=바다'라는 계산식을 가족여행으로 익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산골 사이를 등목 하듯 흘러내리는 가차운 계곡에서 찰박찰박 물살을 헤집어 놓은 적은 몇 차례 되지만, 지구라는 냄비 속에서 고은 샤부샤부 고기처럼 바다에 푹 담가진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안그래도 조막만한 심장에 설렘이라는 주사가 한 방 놓이니 방학을 어찌나 기다렸겠는가. 손이 하나둘 접히는 재미는 이 때부터 참맛을 알았나보다.
어렴풋이 바다가 동해의 깊은 맛을 담고 있었던 것은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향이 동향이든 남서향이든 간에 중요한 건 해향(海向)이라는 사실이었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왠지 모르게 바다의 소금기 낀 냄새가 맡아져 오는 것은 당연한 착각이었다.
또한 어려서부터 차를 오래 타는 걸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이랬던 것 같다.
첫째, 삭막한 회색 도시가 아닌 도화지에 스며드는 자연의 색을 배경으로 부모님과 대화하는 것
둘째, 학교 학습지의 '나의 제일 소중한 물건 1호' 문항 베스트셀러였던 게임보이를 맘놓고 하는 것
셋째, 평소보다 다채로운 간식을 손에 쥐고 다닐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전날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것
넷째, 오래 이동한다는 뜻은 대체로 멀리가는 것이며, 멀리간다는 것은 대체로 새로운 것을 경험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상상
박자의 아구가 들어맞고 흥겨운 리듬이 넘실대는 드라이브였다.
그렇게 도착한 후 바다의 역동적인 출렁임에 마음대신 몸으로 감동해보고, 모래 알갱이들을 침대삼아 망아지마냥 날뛰거나, 오후의 나른한 햇빛과 선선한 바닷바람의 교차를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왜 잠을 차에서 잤을까
이후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부터가 사실 감각기록물의 진정한 실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사이 과정을 간소화하여 써내려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고등학생 때 잠시 들췄던 감각기록물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 당시에는 몰랐으나 우리 가족은 지구를 숙소 삼고 어둑한 밤을 이불로 덮어 차 안에서 잤다. 숙소가 예약이 다 차서도 아니었고,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서도 아니었으며 응당 형편에 맞게 잤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눈을 감고 어둠에 동참했었는데, 고등학생 때 그 기억을 꺼내며 마음이 아련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이라는 언어와 관념을 행위로 확장시키고자 했던 부모님의 의지는 당신들의 추억과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세상에 내던진 한 생명에게 또다른 생명들이 받은 일상과 똑같은 경험을 안겨주고자 했던 것이다.
해는 아침부터 반짝이는 별들을 수면 위에 일렁이게 만들었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만 있던 황량한 주차장에서 맞이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 햇살이 여전히 눈부시도록 따듯했다.
육개장이 가져온 결과
아침 메뉴는 육개장 사발면이었다. 당연히 여행엔 라면이지 싶겠지만 선택지가 없었다면 '당연히'의 기분과 같이 먹을 수 있었을까? 어찌되었든 트라제의 모든 의자를 매트리스처럼 다 눕히고 그 앞에서 버너에 물을 끓이며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바글바글 물이 끓자 차 안에 웅기중기 둘러앉아 사발면 세 용기에 넘으면 큰일날(-모자르는 건 용서할 수 있지만 넘치는 건...) 표시선에 맞춰 물을 딱 담았다. 그런데 기대에 부푼 순간, 무릎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났다.
바로 그 때 사발면 하나가 시트 위로 엎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바다에 합류하려는 듯이 불그스름한 바다가 왈칵 범람하며
낯선 곳으로의 초대를 도와준,
밤의 찬 공기로부터 덜 서럽게 만들어준,
오래 타는 것을 좋아하게 해준,
그런 차의 시트 위에 흥건히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혼나지 않을까 생각했던 찰나에(-그런데 미안하지만, 애처로운 일은 전혀 없었다.)
엄마, 아빠는 국물을 휴지로 수용하면서 나를 괜찮다는 말로, 괜찮다는 품으로 수용해 주었다.
그러자 완숙한 이해의 웃음꽃이 피게 만들고,
서로의 사랑과 의존을 확인시켜주고,
행복의 올바른 기준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여전히 기억나게 만든
'시트에 젖은 라면 향'이라는 감각기록물이 책장에 담겼다.
지나치게 비참할 수도 있었던 신(Scene)이 마음의 건치를 돋보이게 하는 흐뭇한 장면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한순간의 감정섞인 반응의 차이였고, 그것이 곧 평생을 주도하는 가치관으로 형성되었다.
그 뒤에 기억도 사실 전연 없다. 제멋대로의 감각 편집은 감각의 주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붉은 노을을 눈시울에 담아주는 '시트에 젖은 라면 향' 덕분에 형편이 만만해진 지금, 사랑하는 가족과 따듯한 식사를 마주할 수 있다. 아마 새 가정을 꾸린 뒤에도 시트 위의 라면 식사는 가보와 같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