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그 사람들
까미노의 풍경을 담아낸 사진에는 자연스럽게 순례자들이 자리했고 그들로부터 나는 ‘필름 사진을 찍는 여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리고 여정이 계속될수록 내가 사전에 많은 이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카메라 두 대와 수십 통의 필름을 고집스럽게 짊어지고 걸었던 것처럼 남다른 이유로 각자의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스케치북과 물감이거나 여러 권의 두꺼운 일기장이기도 했고, 조미료와 소스 등 요리 재료이거나 흥겨운 파티를 만들어 줄 풍선 보따리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까미노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만난 순례자들과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차례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비슷한 속도로 걷거나 여유를 한껏 즐기는 바람에 자주 뭉쳤던 꼴찌 그룹(그러고도 목표를 눈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러 가곤 했던), 숙소 문제 등 비수기에 발생하는 변수를 함께 헤쳐나갔던 한국인들,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즐기며 현지 정보를 교류하고 일정을 공유하던 유러피안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동행이 되어서 산티아고를 거쳐 피스테라까지 함께 걸어간 친구들까지. 그야말로 ‘국적과 나이를 뛰어넘는’ 까미노의 순례자들에게서 배운 점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아주는 방법이었다. 구구절절한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마디 짧은 안부에 더하는 따뜻한 포옹이 내게는 훨씬 더 와 닿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품에 안겨 그의 마음을 온전히 전해 받을 때마다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방향으로 걸음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면 한 켠에는 늘 그 자리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까미노의 사람들이 있었다. 순례자들을 지나칠 때마다 ‘올라, 부엔 까미노!’ 하고 밝고 경쾌한 인사를 건네거나 잠시라도 까미노의 경로에서 벗어날라치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서 길을 인도하던 마을 사람들. 또는 소정의 대가 만으로 순례자들에게 꼭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이들. 그 중에서도 그라뇽의 성당 알베르게와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의 알베르게 베르데는 특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친구들이 모인 듯한 분위기의 여느 숙소들과는 달리 마치 한 가족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그들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 한층 더 깊은 친밀감을 나눈 친구들의 눈빛에는 어느새 애틋한 감정이 몽글몽글 차 올랐다. 그리고 그 다정한 눈빛들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과연 나의 눈빛도 변화하고 있을지...
* 이어지는 글 : [Enough Alone]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4 #.까미노가 가르쳐준 것
** 산티아고 사진에세이 [까미노, 같이 걸을까]에 대한 소식은 텀블벅 http://tumblbug.com/be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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