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도 설레는 올해 첫눈이 내린 날

출근 지옥

by Olivia

첫눈이 내렸다.

내가 사는 수도권에 내린 눈은 폭설량이 약 40cm로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한다.

수요일에 눈이 내릴 때는 눈이 너무 예쁘게 내려서 업무도 뒤로하고 직장 동료들과 밖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눈구경도 했었다.

"사무실 앞이 삿포로 같아요!ㅎㅎㅎㅎㅎ"

습기가 많은 눈이어서 그런지 팝콘 모양의 굵은 눈이 하늘에서 펑펑 내렸다.

나무와 자동차에 쌓인 눈은 크림을 얹어 놓은 듯이 두껍게 쌓이고 있었다. 돌과 나무에 쌓인 눈이 버섯모양 같다며 순수한(?) 시선으로 눈이 오는 풍경을 구경했었다.

퇴근하며 본 동네 아이들도 신이 났다. 눈사람을 만들고 경비 아저씨들이 치워둔 눈 더미에 발을 푹푹 꽂으며 해맑은 얼굴로 놀고 있었다.


낭만은 거기까지였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창밖이 훤하고 큰 먼지가 떨어지듯이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이러다 출근 못 하는 거 아닌가'하다가 '설마 내일이면 그치겠지'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결국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일어났다.

주차된 차들 바퀴가 반이 묻힐 정도로 폭설이 왔다. 계속 오는 재난문자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폭설로 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자가용보다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2. 현재 폭설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3. 현재 폭설로 관내 버스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난 뭘 타고 출근해야 하지..', '걸어가기도 먼 거리인데'

평소 직장까지 출근 시간은 택시로 20분,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한 번 객기를 부려 퇴근할 때 걸어서 퇴근을 했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일단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은 안 했으니까 패딩을 껴입고 부츠로 온몸을 무장한 다음 눈 속에 출근하는 직장인 틈에 합류했다.

서울에서 오는 좌석버스는 운행정보도 없고... 겨우 운행 중인 마을버스를 탔다. 도로에는 눈 덩어리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나무들이 뒹굴고 있었다. 아파트촌을 벗어나 다음 버스를 갈아타는 데 까지 성공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차들이 한참 밀리고 버스가 움직임을 멈췄다. 앞에 가던 버스가 미끄러져 도로를 막고 있었다. 한 20분 멈춰있다가 버스 기사님의 기지로 어찌어찌 그 구간을 빠져나갔다.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지각을 걱정하는 직장인들의 동동거림과 탄식이 뒤섞인 공기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난 이미 반포기 상태였다.

'어쩌겠어.. 눈 때문인데, 이 지경에 출근하라는 회사가 잘못이지..'


폭설을 뚫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 온 힘이 다 빠졌다. 눈길을 달리는 차도 힘들었겠지만 눈길을 뚫고 걷는 것도 상당히 큰 체력을 뺏어갔다.

부서에 같이 일하는 동료의 가족들 중에는 재택근무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못하는 회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부서에는 뼛속까지 직장인들만 있는지 폭설을 뚫고 출근하는 데 성공했다.

예전에는 눈이 예쁘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미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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