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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코치 이용만 Apr 23. 2020

모든 시작은 창대하다.

나중은, 아무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아기의 100일'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의 280일과 태어난 후 100일의 시간을 더하면, 380일이다. 여기에서 배란일 15일을 빼면 365일이다. 한마디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진 이후로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그 기적적인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기절에 이르게 되는데.


2018년 4월 8일, 아내가 데려온 낯선 남자는 나에게 진정한 100일의 기절을 선물했다.

기절을 하고 나서 정신을 차릴 무렵,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주변인들은 나에게 말했다.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그리고 아들 돌잔치 때, 두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했다. 두 돌이 지난 지금, 28개월에 접어들어가는 데 유치원생을 키우는 부모들이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말한다. 참 이상하다. 갈수록 나는 더 힘들어지는 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때마다 좋을 때'라고 한다. 그때 깨달았다. 뒤로 갈수록 좋았다는 것을.

그래서 아기 만들기 시작할 때가 가장 좋았나 보다.


2014년 10월 18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나는 꿈을 이뤘다.

10월의 신부였던 아내는, 연애 초기나 지금이나 8년째 늘 변함이 없다. 여전히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몸매는 자주 바뀌긴 하지만. 매년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지만 8년째 실패하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일을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아내는 오늘도 양계 농가와 양돈 농가의 소득증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때 깨달았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행복이라는 사실과 뒤로 갈수록 좋았다는 것을. 2012년 12월 첫눈이 내리던 어느 날, 첫눈에 반한 가녀린 소녀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가 가장 좋았나 보다.


2016년 3월 6일, 벚꽃엔딩과 함께 회사 엔딩을 선언했다.

퇴사는 언제나 새롭고 짜릿하다. 늘 가슴 깊숙이 넣어두었던 사직서가 세상 밖으로 빛을 보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치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유레카'라며 외치며 밖으로 튀어나온 아르키메데스처럼. 3년간 나름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뛰어다니는지', '어디로 뛰어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6개월간 고민과 준비를 하고 퇴사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마음껏 가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먹어봤다. 퇴직금이 남아있기 전까지. 서서히 통장에 잔액이 줄어갈 때쯤,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직장인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때 깨달았다. 회사는 다닐수록 고통이고, 사직서는 던지는 찰나만 희열이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할 땐 회사에 가고 싶은데, 회사에 막상 가면 나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입사를 시작할 때가 가장 좋았나 보다.


2020년 4월 23일, 오늘로 '88일째'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물었다. "오빠 오늘도 글 써?", 나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응, 써글!". 써글. 2020년 1월 27일부터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매일 글을 쓰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는 여러 자기계발서와 지인의 말에 혹해서 겁 없이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점 2가지를 발견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글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묘하게 글을 짧게 쓰는 노하우만 쌓여가고 있다. 사실 초반에는 쓸거리가 많았지만, 서서히 글감이 줄어든다. 퇴사 후 퇴직금이 바닥나면서 느꼈던 고통을 글쓰기에서도 느끼게 될 줄을 몰랐다. 어쨌든 없으면 채워야 하는 법. 매일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고, 채운 것을 다시 글로 토해내는 과정이 정말 토 나온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할 때가 가장 좋았나 보다.




뭐니 뭐니 해도 '시작할 때'가 가장 좋다. 

그리고 그 시작이 주는 설렘과 기대는 그 어떠한 것보다 창대하다. 그러니 시작을 망설이지 말길 바란다. 시작을 망설인다는 건, 어찌 보면 가장 창대하고 찬란한 기쁨을 스스로 미루는 것과 같다. 그러니 기꺼이 시작할 것! 나중? 그 끝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잊지 말길.

당신의 탄생은 ‘300,000,000 : 1’의 경쟁률을 뚫고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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