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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코치 이용만 Apr 28. 2020

나는 매너리즘 작가가 되기로 했다.

개성을 중시한 16세기 피렌체 괴짜들처럼.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당신이 알고 있는 매너리즘'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 즉, '타성'(惰性)일 테다. 여기서 타성은 '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 또는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 습성'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다'라는 표현은 '타성에 젖다'라는 표현인 셈이다.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알고 있는 매너리즘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나온 매너리즘 미술부터, 내가 왜 매너리즘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는지까지를 짧고 간결하게.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과도기]


매너리즘은

서양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라고 한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기로 넘어가는 1520년경부터 1600년 사이를 풍미한 양식을 일컫는다. 늘어진 형태, 과장되고 균형에서 벗어난 포즈, 조작된 비합리적 공간, 부자연스러운 조명 등등의 특징이 있으며, 인공미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좌 <파르미지아니노의 '목이 긴 성모'>, 우 <자코포 폰토르모의 '십자가에서 내림'>


특징으로는 왜곡되고 늘어진 구불거리는 형상, 불명료한 구도, 양식적인 속임수와 기괴한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두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전주의자 란지는 16세기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미술은 한 마디로 "미치광이 같은 형상들"이라고 했다.


모방인가 창조인가.


매너리즘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마니에라(방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단어에는 '보고 따를만한 방식'이라는 중립적인, 혹은 보다 긍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이후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마니에라는 자연과 사물의 충실한 모방에 대비되는 예술가 개개인의 주관적 표현,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처] 이민수 미술 칼럼니스트 '사조와 장르' 중에서.


[전반전] 어쩌다가 매너리즘은 '부정적 의미'의 대명사가 되었나.


원래 매너(Manner)란 특정한 양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매너리즘은 특정 기법이나 양식을 따라 작업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술사에서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전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같은 거장들에 비해 이후에 등장한 미술가 세대의 작품들이 보잘것없거나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가 하인리히 뵐플린이다. 그는 1520년 라파엘로가 사망한 후 회화에는 더 이상 고전적인 작품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로 르네상스와 안정적인 고전주의적 미술을 높게 평가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후반전] 드보르작 "기존 형식과 달라서 좋다."


매너리즘을 쇠퇴나 퇴행이 아니라 나름의 개성을 추구하던 것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었다. 20세기 초에 접어들어서야 막스 드보르작을 위시한 학자들에 의해 이런 부정적 시대 개념이 지양되고 매너리즘은 독자적인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재평가되었다.

쉽게 말하면, 드보르작은 오히려 정형을 벗어난 표현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과거의 고전 미술이 황금비율 같이 특정 정형(카논)을 정해놓고 그에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면, 낭만주의 이후에는 도리어 그 정형을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이 대두된 현대미술에 와서, '완성도'보다 '메시지' 혹은 '정제된 표현' 내지는 '혁신' 등의, 반 기교 주의가 형성되면서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에 긍정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조금 이상해 보이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정해진 것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21세기, 괴짜 매너리즘 작가를 자처하다.]


역사적으로 시대적 상황과 내 결혼생활은, 항상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2020년 현재는 어떤가. 버튼 한번 누르면 지도에서 한 나라를 지울 수 있는 핵폭탄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전 세계 지도를 온통 감염시키고 있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곧 인간이 기계의 눈칫밥을 먹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마저 든다. 이제 아내와 아들을 넘어 AI눈치까지 봐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반복된 혼란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모든 학생이 공무원과 공기업에 목숨 건다는 건 그 개인적으로 손해 볼 것은 없다지만, 대한민국 국가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말에 따르면, 개인적 호기심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과학적 발전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선진국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라 발전까지는 모르겠고

나는 내 멋대로, 내 갈길 가기로 했다.


과거 매너리스트들은 전형적인 형식을 지닌 대상을 피했으며, 불쾌하고 끔찍할지라도 평범하지 않은 주제와 모티프를 선호했다. 그리고 통상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감춰진 것,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선호했다.


위트는 기나 재치를 말한다. 위트 있는 사람은 우선 특수한 정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물이나 사건과 개념 간의 관계를 솜씨 있게 놀라운 상태로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철저하게 전형적인 형식을 변형, 파괴하며 비범함을 추구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춰진 것을 찾아내 교묘하게 가지고 노는 걸 선호한다. 나는 그러한 틀에서 자유로운 스타일, 남들이 보지 못한 숨겨진 무언가를 찾고, 교묘하게 바꿔서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각종 수사법으로 웃음을 유발하는데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너리즘 작가, 매너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아내의 숨겨진 의도를 찾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다.


매너리스트들은 고전적 예술의 압제적인 권위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가 나타났다. 그들의 목표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예술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이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예술적인 것을 우선시했으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다. 


위트를 통해 고전적 글쓰기나 말하기의 압도적 권위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다. 나의 목표는 글로써 개인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내 말과 글은 주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이다. 순수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면서, 촌천살인의 짧은 말로 언어의 경제성을 추구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내 멋대로 바꾸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핵심을 교묘하게 꾸며내는 걸 반복한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물들이 곧 내가 된다. 위트로 남들과 똑같은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를 쓴다. 더 이상 미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Insanity :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미친 짓이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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