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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Mar 07. 2017

출장 중 '가을방학'

병가 끝. 복귀완료.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란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또렷하다. 처음 듣는 가수, 처음 듣는 제목의 노래였는데 가사는 콕콕 귀에 박혀, 마치 오랫동안 나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가사를 되씹으며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애써 위로하거나 다 괜찮아질 거라고 토닥이지 않아 이 노래가 참 좋았다.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간 나를 스쳐 가며 ‘참아낼수록 어른이 되는 거’라  했던 많은 사람의 조언에는 그러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첨언은 없었다. 태생적으로 눈에 띄었던 나란 아이는 주변과 닮은 평범한 사람이 되고자 죽도록 노력했다. 이 시대의 평범한 어른이 되고자 내가 꽤 좋아했던 것들은 하나씩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점차 잊혀졌다.

낙엽에 뒹굴며 뛰놀던 가을이 그랬고, 하루도 거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냥 겨울에도 도복만 입고 뛰어다녔던 태권도가 그랬고, 녹음해서 몇 번을 다시 듣던 라디오, 껌딱지라 불렸던 친구들까지.

그러면서 무언가 새로운 걸 좋아하는 일은 더욱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마음을 다 내어주는 일이 더 귀해진 만큼 성가신 일이기도 했고, 사랑을 나누고자 먼저 다가오는 이에게조차 마음을 쉬이 내어주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지금 내가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나는 다른 것들을 위해 우선 대인관계를 미루는 중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잊었고 뒤늦게 아팠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던 용기를 모아 일상에서 한 달간 도망쳤다. 한 치 앞이 두렵기만 했던 삶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나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것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우선 하나씩 찾아 나섰다. 나는 미뤄왔다 표현했던, 그러나 조용히 나를 기다려줬던 고마운 사람들을 매일 만났다. 가끔 만나러 오겠다는 지키고픈 약속도 했다. 좋아했던 것들도 하나씩 다시 찾아봤다. 돈도 시간도 얼마나 더 아껴야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계산만 하던 습관은 잠시 잊었다. 무턱대고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고, 좋아하는 작가, 가수의 창작물에 나의 행복값을 기꺼이 지불했다. 1달을 그렇게 ‘미래의 더 나은 나’, ‘주변에 더 쓸모있는 나’가 아니라 ‘행복한 나’를 위해 오롯이 썼다. 바빴지만 소소하게 즐거웠고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주워 담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찾아 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우지 못했던 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이제야 한 걸음 배워가고 있다고 체감했다.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면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일상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만에 타국으로 출장을 떠나왔다. 우리나라의 가을마냥 높고 푸른 하늘을 매일 보고 있노라니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 떠나야 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지난날들과는 다르게. 이제는 내가 아끼는 것들을 버리고 떠나면서 절대 나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다. 날 버리는 일 따위는 없게 하고 싶다.

이맘때 한국에선 보기 힘든 하늘을 눈으로 끝까지 훑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 한국행 짐을 싸러 간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더는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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