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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석세션> Succession

명품을 걸친 셰익스피어

by becky

방영 당시(2018~2023) 에미상 드라마부문 연출, 극본,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은 물론 연기부문을 휩쓸고 수많은 밈도 만들어졌던 화제의 시리즈 <석세션 Succession>. 한국에서는 항상 작품성이나 재미 대비 인기가 많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인 데다 캐스팅도 화려하지 않아서 (이 시리즈 이후 배우들이 유명해졌죠) 눈이 확 가는 시리즈는 아닐 수 있는데, 사실 한국 사람들도 공감하고 이입할만한 요소들이 많은 드라마이고 무엇보다 웰메이드라 기회가 있으면 항상 추천하곤 하는데요... 오늘은 석세션 추천 드가볼게요.

가장 좋아하는 컨셉의 <석세션> 1 시즌 포스터

일단 제작자들부터 살펴봅니다. 크리에이터/쇼러너는 영국 시리즈 <핍 쇼 Peep Show> <바빌론 Babylon>등을 제작하고 <블랙미러 Black Mirror> <부통령이 필요해 Veep> 등의 극본을 쓴 제시 암스트롱 Jesse Armstrong 입니다. 제작자보다 작가 성향이 짙은 분으로, 총제작을 하며 1/3이 넘는 분량의 극본을 직접 썼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제작자는 애덤 맥케이 Adam McKay 입니다. 직접 연출은 1 시즌 1회 한 편 밖에 하지 않았지만, <빅쇼트 The Big Short> <바이스 Vice> 등 그의 작품에서 연상할 수 있는 스타일 - 갑작스러운 클로즈업이나 날것의 느낌을 담는 다큐멘터리 스타일, 속도감 있는 컷 등 - 이 <석세션>에도 그대로 녹아 있어, 그의 영향력이 크게 느껴집니다.

<석세션> 시즌3 3회

애덤 맥케이 이외에 주목할 만한 제작/연출진은 <부통령이 필요해> 총제작자 중 한 명인 프랭크 리치 Frank Rich, 그리고 총 39편 중 16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마크 마이로드 Mark Mylod 가 있습니다. 마크는 <왕좌의 게임> 주요 에피소드를 연출한 바 있으며 <석세션> 작업 기간에 날카로운 풍자극 <더 메뉴 The Menu>의 감독도 맡아 좋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석세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디테일하고 꼼꼼한 구성과 대사, 즉 대본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살려주는 연기자들도 대단한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석세션>의 앙상블 캐스트는 주로 연극계 베테랑이나 영화 조/단역으로 경력을 많이 쌓은 배우들입니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수많은 작품을 올린,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콕스 Brian Cox를 비롯해 <빅쇼트>를 비롯 조연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연극에 본인 커리어 뿌리를 두고 있는 제레미 스트롱 Jeremy Strong,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꾸준히 연기를 해 오던 맥컬리 컬킨의 동생 키어런 컬킨 Kieran Culkin 등이 있습니다. 레귤러 캐스트가 아닌 게스트, 카메오 출연진에는 홀리 헌터 Holly Hunter, 에이드리언 브로디 Adrien Brody,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Alexander Skarsgård, 체리 존스 Cherry Jones, 호프 데이비스 Hope Davis 등 시즌을 넘나들며 이름 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화번호부를 읊어도 메서드가 될 것 같은 배우들이죠...


주요 인물소개 드갈게요.

로건 로이 Logan Roy

로건은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의 손으로 웨이스타 로이코라는 미디어제국을 일군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아이콘입니다. 첫 번째 부인과 첫째 코너, 두 번째 부인 캐롤라인과 나머지 아이들인 켄달, 로만, 쉬본(쉬브)을 두었습니다. 본인처럼 자식들 또한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지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해 자식들을 매번 시험에 빠뜨리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줍니다.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코너, 켄달, 로만, 쉬브

코너는 로건의 큰아들로 아버지 사업에 관심이 없어 뉴멕시코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지만 한편 대통령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돈을 쓰면서 생산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먼지 같은 지지율로도 대통령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전형적인 허황된 재벌 2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켄달은 코너의 부재로 실질적인 첫째 느낌이며,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지만 로건의 진정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 결과 약물, 도벽 등의 불안정한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도 힘겨워합니다. 동생들에게 경쟁심을 느끼지만 보호본능도 가지고 있어 항상 여러 가지 가치와 선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로만 역시 제멋대로이고 냉소적인 성격이 오랜 시간 아버지와 충돌하면서 더욱 뒤틀려버린 인물. 지나치게 솔직하고 무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가끔씩 힘들 때면 본인을 놓아 버리기도 합니다. 쿨한 척 하지만 누구보다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는 야망 있는 아들입니다.

로건이 '핑키'라고 부르며 애정하는 막내딸 쉬브는 정치를 전공하고 민주당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가족 사업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쉬브의 영리함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던 로건이 정식으로 일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쉬브가 이를 거절 못하게 되면서 이후 그녀도 누구 못지않은 로이 핏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는 애증의 3남매 켄달-로만-쉬브가 웨이스타 로이코에 눈독을 들이게 되면서 아버지의 사랑(=경영권)을 얻기 위해 서로 어떻게 수싸움을 하는지, 아버지 로건은 그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과정에서 셋의 변하는 권력관계와 경영구조 등이 흥미로운 주변캐릭터들과 함께 펼쳐지게 됩니다.

수싸움도 하고 몸싸움도 하는 그들 <석세션> 시즌1, 9회

<석세션>은 이런 내용을 상당한 리얼리티로 보여주는데요. 얼핏 보면 막장처럼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지만, 제작자 제시 암스트롱은 로이 가문이 FOX NEWS의 머독 가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웨이스타 로이코는 보수적인 케이블 뉴스채널인 ATN을 비롯해 테마파크, 크루즈 사업 등을 운영한다는 설정이고 머독은 FOX NEWS를 비롯한 여러 뉴스매체들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보유하고 있죠. 가족 구조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부자와 한국의 재벌은 다른 개념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미디어 업계에서는 가족경영 구조가 꽤나 남아있는 듯합니다. CBS, 비아컴 등을 소유하고 있는 레드스톤 가문도 기업 승계 과정에서 가족들이 여러 사건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고, 2 시즌에 로건이 인수를 시도하는 피어스 가문의 PGM은 뉴욕타임스를 소유한 설즈버거 가문과 비슷합니다.

세계관의 정확성과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저널리스트와 작가들을 고용한 점도 눈에 띄는데요. 뉴욕타임스 편집자이자 미디어 칼럼니스트인 총제작자 프랭크 리치를 비롯해 기자 출신의 정치 컨설턴트, 부 wealth 컨설턴트도 있었다고 합니다. 상위 0.1% 부자들의 삶을 제대로 고증하기 위해 인물들이 브랜드가 드러난 옷을 입지 않는다든가, 야외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겨울 코트를 입지 않는다든가 하는 세세한 것들을 촬영장에서 조언해 줬다고 합니다.


이렇게 리얼리티를 많이 반영하고 있지만 <석세션>은 종종 셰익스피어극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인 욕심, 질투, 사랑, 분노 등의 감정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비극이 일어나고 그들의 추악한 면면이 거리낌 없이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이 뉴욕의 어퍼이스트사이드를 배경으로 정제되고 아름다운 미술, 음악 등과 어우러져 석세션의 분위기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눈물)

<석세션> 시즌3 피날레. 배신과 파국적인 스토리로 레이디맥베스, 리어왕 등의 주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설명을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음악입니다. <석세션>은 피아노가 중심이 된 중독성 있는 테마곡이 유명한데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니콜라스 브리텔 Nicholas Britell 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문라이트 Moonlight>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If Beale Street Could Talk> 등 배리 젠킨스 감독과의 협업으로 유명하며 <석세션>은 그의 최초 시리즈 OST입니다. (이후 <안도르 Andor> 시리즈 음악도 맡았습니다.) 니콜라스는 18세기 후반의 어두운 고전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고 하며, 켄달의 성격에서 영감을 받아 힙합 비트 등의 요소도 추가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로이 가족이 상상할만한 것들을 상상해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요. (너무 신기하다...)

<석세션> 1~4시즌 오프닝. 각 시즌 주목되는 캐릭터, 그 시즌의 뉴스 이슈 등이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는 등 깨알 디테일이 시즌마다 다른 게 특징.

음악이 좋은 시리즈는 삽입곡이 좋거나, 오리지널 스코어가 좋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석세션>은 압도적으로 오리지널 스코어가 너무 좋은 시리즈예요. 특히나 엔딩 크레딧에 삽입되는 곡 때문에 거의 매번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시즌의 테마를 이후 시즌에도 발전시켜 다른 곡들을 만드는데 그게 질리거나 이상하지 않고 더 풍성하고 좋은 말도 안 되는 현상이.. (4시즌 OST를 제일 좋아합니다 ㅠㅠ) 정말 니콜라스 브리텔은 천재만재입니다. 시리즈 보고 좋은 분들은 OST도 따로 꼭꼭 들어주세요.


종영 후에도 계속 찾아보게 되는 시리즈 맛집 (ㅋㅌ) <석세션> 은 연기와 디테일 보는 맛, 대사 곱씹는 맛이 진짜 좋습니다. 영어 말장난과 레퍼런스, 대사량, 전문용어 등으로 번역레벨이 극상인데 쿠팡플레이 번역이 꽤나 괜찮습니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둡시다 ㅋㅋ


출연 배우들의 추천작도 놓고 갑니다

제레미 스트롱 - <어프렌티스:트럼프의 탄생> <빅쇼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키어런 컬킨 <리얼 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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