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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더 펭귄> The Penguin

펭귄 보러 왔다가 소피아에 빠지는 연기차력쇼

by becky

지난 9월 15일 있었던 프라임타임 에미 어워즈에서 <더 펭귄The Penguin>의 크리스틴 밀리오티Cristin Milioti가 리미티드/앤솔러지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더 펭귄>은 2024-25 시즌 미국영화조합 AFI 이 꼽은 올해의 프로그램, 작가조합의 작품상 등을 수상, 골든글로브와 배우조합상에서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많았는데 특히나 시리즈를 대표하는 에미상에서 크리스틴이 여우주연상을 타니 너무 기뻤어요.

아름다운 그녀의 시상식(좌) 모습과 HBO 애프터파티(우) 모습. 소피아 바이브 한껏 살린 애프터파티 착장이 너무 맘에듦...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영화에 이은 콜린 패럴 Colin Ferrell의 비주얼 변신이었는데요. <더 배트맨> (2022) 때도 함께 작업했던 스탭인 마이크 마리노Mike Marino (The Different Man, Joker 등 작업)가 이번에도 그의 특수분장을 맡았습니다. 시리즈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맷 리브스 Matt Reeves는 마이크와 함께 그의 얼굴 상처들을 만들 때 역사 속 군인들이나 펭귄, 독수리 등의 조류 중 알파 메일들이 싸움을 벌이고 나서 남은 흉터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합니다. 특히 새들은 부리로 여러 번 싸우기 때문에 얼굴에 길고 큰 상처가 많이 남는다고 하는데, 오즈의 볼에서 인중까지 이어지는 상처는 그런 부분들을 참고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목소리나 행동 등 많은 부분을 통제해야 했지만 분장을 통해 콜린 본인도 연기하는 데 엄청난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하는군요. (분장 테스트 한 날 워너 촬영장 스타벅스에 혼자 갔는데 아무도 본인을 알아보지 못해서 너무 즐거워했다는... 그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콜린의 펭귄 변신 전/후 모습 (출처: 특수분장 담당 Mike Marino 인스타그램 @prorenfx)

<더 펭귄> 시리즈는 영화 <더 배트맨>의 일주일 후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를 알고 봐도 좋지만 사실 영화는 배트맨의 시점에서 본 고담이고, 시리즈는 펭귄(이하 오즈) 시점에서 본 고담이기 때문에 내용상 겹치는 지점은 거의 없습니다. <더 배트맨 파트 2>(2027)는 <더 펭귄> 직후의 타임라인을 그린다고 하는데 <더 펭귄>의 성공으로 영화에서 오즈 캐릭터가 조금 더 조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피아 캐릭터도 영화에 나오지 않을까 예측이 됐습니다만 나오지 않을 거라고 최종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시리즈 초반 고담은 마로니 가문(살바토레 마로니), 팔콘 가문(카르민 팔콘)이 양분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카르민이 죽고 아들인 알베르토까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딸인 소피아만 남게 되는데 팔콘 가문에서는 소피아를 후계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카르민은 전부터 남매 중 더 영민한 소피아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가족과 조직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소피아를 무시하고 제외시키죠. 감옥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그녀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한편, 오즈는 소피아의 기사 출신으로 언젠간 한몫 단단히 잡을 꿈을 꾸고 있는 자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불편했던 다리와 비호감의 외모로 엄청난 컴플렉스를 갖고 있고, 항상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기회주의적인 면모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 엄청난 사업수완, 눈치, 말발 등등. 그의 약점이라면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로, 어머니에게는 끊임없는 인정욕구와 애정결핍이 있습니다.

소피아는 남들과는 달리 오즈에게 남다른 가능성을 보고, 오즈 역시 소피아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겉으로는) 공생 관계를 맺게 되는데 둘의 관계가 금방 아슬아슬해지면서 극이 점점 쫄깃해지죠.


사실 갱들의 권력과 암투를 그린 드라마는 정말 많지만 <더 펭귄>이 매력적인 지점은 스토리보다 캐릭터 탐구에 몰입한다는 것입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은 모두 결핍과 패배감을 품고 있는 아웃사이더이며, 일반적 윤리기준으로 본다면 악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서사를 다 보고 난다면 1차원적인 악인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만은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입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은 존재감과 캐릭터성이 많이 약하지만, 이 두 사람만으로 그냥 압살이라 그렇게 부족하게 느껴지진 않아요.)

오즈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많은 설정들이 있지만, 보라색도 남색도 아닌 자두색 plum 으로 커스텀한 마세라티가 그의 괴짜같은 성격을 잘 드러내는 듯

저는 <더 펭귄> 각색의 킥은 소피아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오즈와 소피아 모두 그들 기원에 대한 백스토리가 있는데 (소피아 4회, 오즈 7회) 두 편 모두 강렬한 에피이지만 특히나 전 소피아의 4회를 너무 좋아합니다. 3회까지 소피아는 DC원작 캐릭터와 같은 설정인 아캄수용소 출신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으로 묘사되는데요. 4회에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일부가 새로 각색되고, 이후부터 전개되는 줄거리로 인해 소피아라는 캐릭터가 더 현대적이고 매력적으로 확 바뀝니다. 내용상 반전을 주는 재미도 있고요. 소피아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최고의 각색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녀의 감정 변화는 메이크업, 헤어, 의상 등에서도 적절하게 반영되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언니...

사실 소피아 캐릭터를 더 보고 싶은 이유만으로 <더 펭귄>이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리미티드 시리즈로 소개된 이상 말 바꾸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펭귄>을 보고 크리스틴에게 빠지신 분들에게는 귀엽고 강단 있는 매력의 영화 <팜 스프링스>(왓챠)와, 근미래 SF대작ㅋㅋ <블랙미러> 401 [USS칼리스터](넷플릭스) 를 강추합니다. 두 작품 모두 판타지, 미스터리 요소가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어요.

8편 한 시즌으로 완성도를 꽉꽉 채운 <더 펭귄> 붐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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