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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ㄱㅍㅇ Apr 06. 2022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X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는 SF 작가 김초엽과 변호사, 작가, 연극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원영이 장애와 기술을 주제로 <시사IN>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두 작가가 열 편의 글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후천적 청각장애인인 김초엽과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은 장애 당사자로서 비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기술에 대한 환상을 비판한다.


시각, 청각 장애인이 첨단 기계를 이식받아 다시 보고 듣게 된다거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의족을 달고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등의 신화는 미디어와 대중이 사랑하는 소재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이런 기술은 먼 이야기일 뿐 아니라(누구나 그 비용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선의 선택지조차 아닐 수 있다.


김초엽의 경우 주로 강연을 하거나 수업을 듣는 등 사람들을 만나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청기를 착용하는데, 보청기를 이용해 듣는 경험이 비장애인들의 청각 경험만큼 매끄럽지 않을뿐더러 이물감과 주위 시선 등을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다. 그는 '잘 듣게 해주는' 기술보다 오히려 말을 그때그때 문자로 바꿔주는 문자 통역 기술을 선호한다.


김원영의 경우 휠체어가 거의 본인의 몸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긴 하나,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 공간이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집에 혼자 있을 땐 무겁고 커다란 휠체어보다는 맨 두 팔이나 바퀴 달린 낮은 의자가 더 편하다고 느낀다.



장애인 개인의 경험과 선호하는 기술이 이렇게나 다른 상황에서 비장애인 중심의 '정상 상태'만을 추구하는 능력 중심주의 기술과 이를 '따뜻한 기술'과 같은 말로 표현하는 시혜적 시각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감각과 신체 능력을 '되돌려주는' 기술은 사회가 추구하는 '정상'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에 보기 좋아 보일 뿐, 장애인 당사자 개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며 기계와의 결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 역시 지워진다.



(출처-IMDB)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후천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된 주인공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은 후 겪게 되는 청각 경험을 묘사하는데, 기계를 통해 들어오는 불편하고 낯선 소음들을 재현함으로써 청각장애인이 기술과 결합하며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여겨지던 이 기술이 그 환상과는 동떨어진 효과를 가졌을 수 있으며 장애인을 '완전한 정상인'으로 바꾸어 놓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방향이든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발전하고 그들의 존재가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의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당사자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책의 저자들도 지적했듯, 본인들이 정제된 단어로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혜택을 누리는 것에 가까우며 장애인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장애인들의 실생활을 고려하는 장애 정의와 접근성이 기술 개발의 필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최근 뉴스를 보면 이런 '온건한' 이야기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꿈같은 이야기 같다. 최근 서울 지하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출퇴근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위 책에서 주구장창 비판했던 시혜적인 시선조차 없는 모습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신체적 정상성을 지니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배제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능력주의의 대표주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시위대가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다"라는 등의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연대)이 시위를 중단하고 토론을 제안하는 등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도리어 '혐오자 프레임을 씌운 것에 사과하라'는 입장이다. 이젠 누가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나는 종종 나오는 공사로 인한 이용 제한에 사과하는 등의 안내 방송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라 관련된 검색을 하던 도중 나무위키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 항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 책에서도 장애인을 위해 만든 지하철 환승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휠체어를 타는 이들이 당연히 찾아볼 만한 정보 목록, 지도를 직접 마주하자 단번에 현실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더 놀라웠던 것은 고속터미널역(7호선), 서울역, 약수역 등 인프라가 몰려있는 서울 중심지 주요 환승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휠체어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도 3호선에서 퇴근길 지하철 시위를 목격한 적이 몇 번 있는데, 하루는 약속 시간에 늦어 중간에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원한다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이고 가까운 거리였다면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은 어떨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은 접근할 수도 없을뿐더러 버스에 휠체어를 올리기 위해 출발이 지연되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일반 택시엔 휠체어를 올릴 수 없어 대기 시간이 긴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 등 보편적인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자가용을 살 수 없는 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성의 끝을 달리는 이들이 사회지도층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준석 대표가 좋아하는 서민 이동수단인 자전거 역시 '사지 멀쩡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동권이다. 같은 당에 시각장애인 의원이 있음에도 그렇게나 감수성이 없는 건….)



아무리 말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여전히 인권을 말하는 이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멀쩡한' 감각을 가진 우리는 그들의 말을 보고 들어야 한다. 우리와 다른 이들의 생각은 그들과 이야기해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으니까. 문이 열린 채 멈춘 지하철에 서서 나는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었다.





이 글을 쓰며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곤 되도록 감각을 나타내는 표현을 쓰지 않아보려 했다. 당연하게 여기며 사용해온 말들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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