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코코아와 커피를 섞은 설탕 만땅 카페인 만땅 음료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도 눈이 뻐근하고 집중이 안되며 자꾸만 의미 없는 스마트폰 게임에 손이 갈 때 내가 즐겨 먹는 음료다. 카페인 중독을 탈출했다는 사람치곤 헤비한 음료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지금 일주일에 두 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는, 현대인 치고는 꽤나 건강한 카페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카페인 중독자였다. 금단현상에 시달리기도, 과다 섭취로 손을 덜덜 떨기도 하는 중독자. 작년 이맘때쯤 커피를 끊기 시작해 3~5개월 정도 걸렸으니까 이제 약 7~9개월째 클린(?)한 삶을 살고 있다.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나는 종종 최초의 쾌감에 집착한다.) 프림과 설탕의 차이도 모르면서 어른들이 먹던 믹스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홀짝 얻어 마시던 맨발의 어린 아이다. 달콤 쌉싸름한 맛에, 추울 땐 따땃하고 더울 땐 앗 차가운 이 짜릿한 음료를 맛보기 위해 평상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옆에 말없이 앉으면, 커피를 휘휘 저은 숟가락을 물려 주시거나 옹골지게 커피를 머금고 있는 얼음 조각을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그것이 나의 겨울이고, 또 여름이었다.
나만의 온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된 것은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를 시작하면서 였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성적에 신경질적으로 민감했던 나는 평소에는 하루 한 잔, 시험기간에는 하루 두 잔의 커피를 마시며 업보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제 그리 낭만적이지 않게 된 이 음료는 마치 영양제처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갔다. 방학 때는 좀 달랐나, 되짚어봐도 학원과 보충수업이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카페인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를 질책하고 싶진 않다. 그땐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 같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는지 모른다.
업보 경찰은 금세 찾아왔다. 당시 배우던 생명과학 교과서에는 몸속에 흡수된 화학물질이 작용하는 방식과,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했을 때에 특정 호르몬 또는 단백질에 과잉 /결핍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가 나왔는데, 이는 카페인이라는 각성제가 내 몸에 끼치는 영향을 질책이라도 하듯 완벽하게 설명해주었다. 내 상태가 어땠냐 하면, 일어난 지 한 시간 내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마치 뇌가 쪼그라드는 듯한 끔찍한 두통이 일었다. 뒤늦게 커피를 부어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고 소화불량과 메스꺼움으로 그날 하루를 망치기 일쑤였다. 내 몸은 항상 카페인을 원했고, 점점 더 많이 원했다.
커피는 더 이상 잠을 쫓거나 집중력을 향상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살아갈 수 없었고 나는 늘 커피에 끌려다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실수를 배움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시험기간이랍시고 두 세잔을 더 마시는 바람에 종종 가슴이 빠르게 뛰고 정신이 멍해지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불행히도 재수를 하게 되어,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는 거의 6년간 통조림 속 생선처럼 커피에 절여져 심신이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눈앞의 것을 보기 급급했던 입시 기간을 지나, 아직 쓰이지 않은 기나긴 미래를 앞두게 된 나는 그제야 커피 끊기를 진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몇 번 시도한 적은 있었다. 주말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딱 이틀만 커피를 참아보자는 매우 단순한 도전이었다. 물론 실패였다. 앞서 말했던 것 같은 복합적인 고통이 찾아왔고, 역시 무작정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건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슬슬 장기전을 예상하기 시작한 후인 대학생 땐 조금 더 나은 계획을 세웠었다. 3일마다 한 잔씩 안 마시기, 하루 걸러 한잔 마시기 등 스스로를 살살 달래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으나 나약해지는 마음과 귀찮음, 몰아치는 자취 생활로 이들 역시 단회만에 끝나고 말았다.
자취할 때의 나는 그야말로 몸에 안 좋은 것은 다 골라했었다.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던 이 신입생은 최소 학점을 들으며 집에 틀어박히거나 친구 집을 전전하며 불규칙한 식사, 수면, 그리고 알콜을 즐겼다. 주식은 라떼와 나쵸칩. 영화에 빠져있던 나는 영화관에서나 집에서나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라떼 한 잔과 치즈 소스를 듬뿍 찍은 나쵸는 최고의 식사 대용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다. 공복에 라떼는 소화기관에 최악이다!) 몸은 썩어갔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언젠가부턴 커피를 끊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왕 먹을 거 맛있는 걸로!'를 외치며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길로 선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업보는 실존한다!! (진짜 그렇게 믿는 건 아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조금은 맞고 조금은 틀리다. 사람은 바뀔 수 있고, 더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인간이 타인의 말 한마디로 한 번에 휙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신체적, 감정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주로 손해)이 오는 사건을 만난 후에만변한다. 이것은 고백이다.
평범한 '커피 끊은 후기' 치곤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여정의 시작은 작년 봄, 새 집으로 이사를 감과 동시에 찾아온 허리 통증이었다. 짐을 옮기다 삐끗하기라도 한 건지, 단순 스트레스 때문인진 몰라도 평소보다 훨씬 심한 요통에 나는 조립되지 않은 이케아 가구들 옆에 드러누워 버렸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통증은아무런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에게조차 틀어진 뼈와 현저히 떨어진 골밀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 나는 다음날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말만 하고 절대 실천하지 않았던 바로 그 조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백'이라는 말을 괜히 쓴 것이 아니다. 의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조깅의 효과는 굉장했다.(!)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거의 다 사라졌다. 결국은 운동 부족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로 홈트레이닝 기구를 찾아보고 더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운동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벼운 걷기 10분, 20분, 30분. 심장을 펌프하기 위한 팔 벌려 뛰기 1분, 2분, 3분. 근육 욕심을 조금 넣어 팔 굽혀 펴기 5회, 10회, 15회 등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점차 신체활동을 늘려 나가니 몸도 마음도 활기를 되찾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하다 보니 매일 하던 습관 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커피다. 운동 관련 웹진을 읽다 보면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상식들 : 커피가 운동에 도움이 될까?' 같은 제목들이 눈에 띄곤 하는데 읽어보면 결론은 하나다. 커피를 먹은 직후 조금의 부스트 효과를 느낄 수도 있지만 다량의 카페인은 결국 칼슘 흡수를 방해하는 역효과가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뭐 프리 워크아웃pre-workout을 섭취해야 할 만큼 고강도의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뼈가 삭아 없어지지 않으려면 커피를 끊는 것이 맞았다.
이미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백수다. 재작년에 대학을 수료했으니까 이제 1년 반이 넘게 무소속 1번으로 살고 있다. 절망적인 시간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언가를 성취해내기엔 완벽한 시기다. 나는 그렇게 보석십자수를 시작했다. 아, 아니 커피 끊기를 시작했다.
2020년 4월 말쯤, 약 3-5개월 계획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1주 차 목표는 하루 두 잔의 섭취량을 한 잔으로 줄이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두통과 그 날의 컨디션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바로 끊을 수 없었다. 대신 점심을 먹은 후 커피가 더 마시고 싶어도 절대 마시지 않았다.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 있을 때엔 조금 힘들었지만, 기운이 조금 없을 뿐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었다.
그다음 목표는 이전에 좌절했던 3일에 한 번씩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실패였다. 하루 한 잔 생활에 조금 익숙해진 듯했지만 하루 종일 카페인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것은 힘들었다. 바로 3일에 한 번씩 반 잔을 섭취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1-1-1/2의 루틴) 기운이 빠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플라시보라고 믿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맹점은 내가 백수라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며 2주를 보냈다.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욕심을 부렸다. 이제는 이틀을 커피 반 잔, 3일 째엔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았다. (1/2-1/2-0) 종종 두통이 있었지만 심하지 않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단계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가 마시고 싶은 욕구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어떤 날은 커피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스케줄 상 커피를 마시는 날임에도 '까먹어서'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심했던 두통도 웬만해선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천천히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다.
3개월 후 정도였던 것 같다. 아예 커피를 마시지 않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는 조금 힘들었다.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고, 집중력이 흐렸다. 거듭 말하지만 백수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이 상태에서 취직을 하거나 공부를 시작했다면 바로 원상태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커피의 환각이 코끝을 스치기도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쓰던 커피 기구들은 텅 빈 채 구석진 곳의 인테리어가 된 지 오래였다. 찬장엔 비상시를 위한 미니 카누 10봉 만이 놓여있었다.
두 계절 정도가 지나자 나는 비로소 카페인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고 두통이 생기는 일도 없었고, 집중력이나 수면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예전엔 어떤 음료든 마시면 카페인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초능력(?)도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슬슬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할 일이 많다거나 집중력이 필요할 때, 혹은 커피와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을 디저트가 생겼을 때 반 샷 정도의 묽은 커피를 마셨다. 마신 후 몸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더 마시고 싶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지속해온 운동과 식습관 개선이 합쳐져 몸은 더 건강해졌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이제야 제목의 의미를 언급한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좋아하지 않으면 중독될 일도 없다. 커피의 향이 좋고, 몸을 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목넘김이 좋고, 식사 후나 디저트를 먹을 때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쌉쌀함이 좋다. 친구들, 가족들과 분위기 좋고 쾌적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일이나 공부를 하는 것도 좋다. 각각의 원두가 가지고 있는 맛을 알아가는 것도 좋고, 실내 인테리어로도 안성맞춤인 커피 기구들을 연금술사처럼 사용하는 것도 좋다.
내가 싫었던 것은 커피가 나를 아침잠에서 깨워주는 유일한 것이며,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것, 하루 종일 어디서 커피를 먹을지 생각하며 스케줄을 짜야한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커피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나 자신은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서워질 때도 있다. 가끔은 그 의존하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일단 커피를 마시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있었기 때문에 몸이 안 좋거나 집중력이 흐려질 때면 ‘커피를 안 마셔서 그래’라고 생각한다든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커피를 밥 대신 먹는다든지 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계속해왔고, 커피를 만병통치약처럼 대했다.
커피를 끊은 것, 정확히 말하면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난 것은 결국엔 다시 커피를 즐기기 위함이다. 나는 커피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평생 안 먹고는 못 살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오랜만에 봐야 반갑듯, 쾌감은 유예된 기간에 비례해 커진다.(속된? 말로 쿨타임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대로 커피와 정말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나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고, 처음부터 다시 커피를 발견할 기대에 차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는 중독되지 않을 것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