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북토크

추억의 빵을 묻다

by 민송


띵동!!

벨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승민이가 달려 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지호와 승민, 두 수다쟁이는 가벼운 인사 후 바로 각자 하고 싶은 말부터 내뱉는다. 늘 그렇다.


이어 승민이는 얼마 전 미국 여행에서 사 온 선물들이 가득 담긴 종이 가방을 건네고, 지호는 우리가 가져간 선물 중에 엄마의 책을 꺼내 승민이에게 준다. 그야말로 시끌벅쩍한 선물 교환식이다.


"잠깐만."

승민이가 똑같은 책을 들고 뛰어 온다.

"이거 봐. 우리 집에도 있지."

온라인 예약 판매로 나오자마자 샀다며, 승민 엄마가 웃으며 부엌에서 우리를 반긴다.

"작가님한테 사인받으려고 꺼내놨어요. 이따 사인해 주세요."


오늘 아들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지호와 승민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나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서로 의지하며 일 년을 참 즐겁게 보냈고, 그 해 우리는 당일치기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3학년에 올라가며 승민이네는 이사를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나고 있다.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때로는 승민 엄마와 나만 둘이서.


아들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승민 엄마가 참 좋았다. 성격은 다르지만 삶의 태도와 생각의 결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사람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괜히 걱정하거나 재지 않아도 될 만큼 편안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 내가 러닝을 시작한 것도 승민 엄마 덕분이었고, 그녀는 나의 브런치 글까지 읽는 몇 안 되는 귀한 지인 중 한 명이었다. 내가 뭘 하든 내 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는 그녀가 늘 고마웠다.


지난달, 책이 출간되어 나왔을 때, 승민이 엄마는 여행 중에도 먼저 축하 인사를 전해왔다. 오늘 아침 나는 생전 처음으로 책의 맨 앞 페이지를 펼쳐 사인을 했다. 내가 작가 사인이라니. 좀 오글오글 거리긴 했지만, 승민엄마에겐 꼭 내 흔적이 담긴 특별한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왠지 책을 샀을 것 같았지만, 직접 산 책과 선물 받은 책은 엄연히 다르니까.


승민이가 커피를 내려주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넘기는데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저 모카빵 읽었어요.”
“어머, 정말?”

나의 놀라움에 승민 엄마가 덧붙인다.
“지호 엄마 글만 찾아 읽더라고요.”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글을 ‘찾아서’ 읽었다는 말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승민이가 묻는다.
“근데 이모는 왜 미소빵이에요?”
“응 그건 빵방 다른 작가님들이 지어주셨지.”

귀여운 질문이다. 내 아들 지호는 내가 쓴 글 중에 빵 먹고 살찐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다. ‘10킬로 안 쪄서 다행’이라는 그 글 말이다. 지호의 말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아이들은 식사 후 거실과 방을 오가며 놀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빵 책과 함께 가져간 쌀카스테라를 먹으면서.
“책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되고, 위로도 받았어요. 엄마라서 딱 느껴지는 그런 포인트들이 많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승민 엄마는 예전에 어떤 빵을 가장 좋아했어요?”

"고로케와 사라다빵이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빵이름이 두 개나 나왔다. 승민 엄마는 친정아버지가 빵을 좋아하셔서 다른 집보다는 빵을 많이 먹은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아버지가 사 오시던 으깬 감자가 들어간 고로케를 정말 좋아했다고. 그리고 친한 친구와 사라다빵을 자주 사 먹으러 다녔던 추억도 있단다. 그땐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고. 친구가 좋았을까 빵이 좋았을까. 아마 둘 다 좋았겠지.


순간 바삭한 껍질 속 부드러운 감자가 숨어있는 고로케와 아삭한 채소가 마요네즈와 버무려져, 빵 사이 터질 듯이 들어가 있는 사라다빵이 떠오르며, 입에 침이 고였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는 추억의 빵이 있다. 그런 걸 소울빵이라 불러도 좋겠다. 놀러 갔던 아들 친구 집에서 어쩌다 시작된 북토크는, 빵 이야기를 넘어, 각자의 시간을 꺼내 보게 했다. 뜻밖의 북토크, 그리고 추억의 빵. 고로케와 사라다빵을 보면 이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겠지. 우리 모두에게는 그렇게, 이야기를 데려오는 빵이 하나쯤 있으니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우리의 빵 책은 우리들의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에게도 그런 질문 하나쯤, 빵처럼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추억의 빵, 소울빵은 무엇인가요?




번외- 책은 어디로 갔을까

사인한 책을 건네며 말했다.
이미 산 책은 또 다른 빵순이에게 선물해도 좋겠다고.
우리는 처음부터 빵과 함께 건네기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날 저녁, 메시지가 도착했다.
책은 빵순이가 아닌 빵돌이에게 갈 예정이라고.

친구들과 빵 배틀을 한다는, 흔치 않은 빵돌이.
그의 소울빵은 무엇일까.
질문은 이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사람에게 건네졌다.



빵순이들의 책, 빵돌이에게로 가다. 질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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