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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송 Nov 24. 2024

오페라하우스는 멀어져가고

호주 와서 갑자기 나타난 견과류 알러지

호주에서 맞이하는 다섯 번째 아침.   


오늘은 아들 지호가 태어났던 병원(Royal North Shore hopsital)을 둘러보고, 시티로 가서 오페라하우스를 구경하는 날. 저녁엔 남편의 유학 시절 친구들도 만날 예정이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나왔다.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긴 연휴라 그런지 규모가 꽤 큰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참 한산하다. 병원스럽지 않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잘 가꿔진 정원을 둘러보고 간식을 먹기 위해 카페테리아로 향한다. 나는 롱블랙커피와 구운 견과류를, 지호는 달콤한 도넛을 하나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는데, 어쩜 하나도 안 변했네. 정말 똑같아.     



7년 전. 예정일이 이미 지난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미리 싸놓은 가방을 싣고 병원에 도착하니, 9시부터 유도를 시작하자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오란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나는 남편과 둘이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따끈따끈하게 구운 파니니를 씹으며 기도했다. ‘제발 자연분만 하게 해 주세요. 제발.’ 그때 남편은 유학생, 나는 일을 그만두고 배우자로 가 있는 상황이라 학생보험으로 커버가 안 되는 병원비가 그리도 무서울 줄이야. 기억이 스쳐 지나자, 내 앞에 앉아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냥 신기한 듯 두리번두리번. “지호 낳던 날에 엄마랑 아빠가 바로 이 자리에서 아침을 먹었거든. 지금은 아빠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랑 같이 있네.” 한쪽 눈을 찡긋하며 지호의 이 순간에 의미를 보태어 본다.    





간식으로 에너지 충전을 했으니 이제 오페라 하우스를 보러 가볼까. 우리는 신나게 트레인에 올랐다. 병원이 있는 세인트 레나즈에서 시드니 시내까진 꽤 가까운 편. 노스 시드니부턴 창밖으로 시드니 시내와 오페라 하우스가 보일 테니 2층으로 올라가 왼쪽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몇 정거장 안가서부터 지호가 눈을 긁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한데. 불길한 예감은 왜 늘 틀린 적이 없지. 눈이 가려운지 지호는 연신 눈을 깜빡이며 긁어대고, 눈 주위는 벌써 빨갛게 부어올랐다. 워낙 겁이 많은 아들이라 부어오른 눈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엄마 어떡해? 여기선 병원도 못 가잖아.” 울먹이는 지호부터 안심시켜야 한다. 

“아니야. 여기도 병원이 있고 한국인 의사 선생님들도 많아.” 

일단 다음에 내리자. 약국부터 가야겠다. 그때 그 알러지 반응이 분명해.



지호는 견과류 알러지가 없던 애다. 이 증상은 얼마 전 삼촌 결혼식에서 갑자기 한 번 있었던 일일 뿐,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증상이 아니었다. 이후로 나름 신경 쓰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하필 오늘, 하필 호주에서 두 번째 경험이라니,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의 회로는 자동적으로 자책을 향한다. 내가 너무 방심했나. 휴우.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 때마침 창밖으로 오페라하우스가 가까워진다. 지호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그 오페라하우스가 아닌가. 이만큼 가까이 와 있는데, 지호는 눈을 뜨질 못한 채 내 손만 꽈악 쥐고 있다. 그 손을 붙든 채, 저만치 멀어져 가는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려니 자책의 농도가 더 진해진다. 





윈야드 역에서 내리자마자 약국으로 향했다. 비행할 때 숙소가 있던 곳이라 다행히 약국의 위치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가운을 입은 약사님에게 곧장 달려가 알레르기인 거 같다고 지호의 눈을 보여주니, 감염 (infection)인 거 같다 하신다. 실랑이할 틈이 어디 있나. 약사님이 권하시는 안약과 Telfast라는 알러지 약을 둘 다 사서 나왔다. 근처 아무 카페에 앉아서 약부터 먹이고 안약을 넣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빨간 눈을 꿈뻑꿈뻑.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견과류는 분명 내가 먹었는데, 지호는 먹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거지? 목이 간지럽지도 않고 눈만 이런 거면 혹시 손에서 뭍은 건가? 내가 견과류 먹은 손으로 지호 손을 잡아서? 설마. 설마. 그리고 이내, ‘내 탓이구나.' 

지호를 향하던 시선과 어깨가 동시에 쿵 내려앉았다.     



 “약 먹었으니 곧 내려갈 거야. 괜찮아지면 우리 오페라하우스 보러 갈까?” 놀란 마음이 컸는지 집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는 아들. 사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야. 여기까지 와서 오페라하우스도 못 보고 아쉽긴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전화로 저녁 약속을 미루고, 이든이네 집으로 돌아가는 트레인을 기다린다. 역시 아이와 하는 여행은 쉽지 않다. 돌발 상황의 연속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어. 그래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이만하니 감사해야지.     

 





“다시는 견과류 안 먹을 거야.”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뱉은 엄마의 비장한 선언에 지호가 피식 웃는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단다. 대신 중요한 건 “손 씻기”. 견과류를 먹고 나면 바로 깨끗이 손을 씻기로 약속한다. 

그리고는 세상 반가운 말. 

엄마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말. 

"아까 약국에서 멋있었어. 엄마 영어 하는 거.”

엄마표 영어를 거부한 뒤로 별의별 노력을 해도 영어에 부정적이기만 했는데, 호주에 오니 아들에게 칭찬을 들어보는구나. 왜 영어가 필요한지, 영어를 하면 뭐가 좋은지, 이제는 좀 느끼려나. 


오는 내내, 노선표를 보며 우리가 내렸던 역이름을 찾아서 외우려는 지호를 보고 있으니,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래, 이렇게 영어랑 친해져서 가는 거야. 이게 확실한 영어준비운동이지.            








브런치에 올린 첫글입니다. 

매거진 글 순서를 위해 다시 발행합니다.  

 

작가 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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