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과 상처 그리고 진실과 화해
폭력을 겪은 부부의 상담은 초반부터 무겁다. 신고와 재판을 거쳐 법원의 상담명령 이행을 받고 강제로 찾아온 내담자들에게 자발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수 십 년도 더 된 예비군 훈련을 받았을 때 가졌던 극단적 수동성과 귀찮음이 극대화되었던 내 마음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런 걸 한다고 도움이 되겠어요? 강제로 사람 끌고 와서 벌주자는 거지... 저는 그냥 시간만 채우는 거죠. 달라질 게 없어요. 제가 상담사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이런 제도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거죠.”
생각보다 행위자(가해자)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어서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특히 나 보다 나이가 많거나 덩치가 크면 더 그런 것 같다. 상담이 내담자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고 이 시간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둔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내 말은 상담실 공기를 가를 분이다.
직구를 던지다
팽팽한 긴장과 표면적인 대화들만 오고 가는 것을 견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 표면적인 대화가 핑퐁처럼 테이블 사이를 오갈 때 나는 묵직하게 직구를 던져 승부를 걸어보기도 한다.
“아까부터 말씀을 하실 때 많이 웃으시네요. 듣고 있는데 저는 그다지 웃기거나 재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말씀 중간에 나이를 자주 언급하시네요. 상담사님이 나이가 어려서 이해를 못 하실 거라고... 제가 남편 분 보다 나이가 적은 것은 맞습니다. 나이를 자꾸 언급하시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서로 치열하게 샅바싸움을 하는 동안에 어느 한구석엔 신뢰가 쌓이는 게 아닐까 한다. 적어도 저 상담사가 대충 시간 때우려는 사람은 아니라는 인상은 줄 것이다.
1:1 개별상담 - 죄책감과 상처
부부가 동시에 상담을 하지만 때로는 1:1로 상담을 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물론 여기에서 부부가 함께 공유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확히 안내해야 한다.)
힘 부리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았던 남편들도 1:1로 상대하는 상황에선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같은 사람이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극적으로 달라지는 남편들도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솔한 자세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상담사가 함께 있는 자리는 작은 사회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의 행적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체면은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힘주어 이야기한다. “걱정하시는 부분 잘 알겠습니다. 여기는 비난하고 모욕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를 믿으세요.”
폭력의 피해자인 아내들은 또 그들대로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보다 편안하게 자신의 상처를 표현한다. 몇몇 내담자들은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존중되는 환경은 내담자가 비난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약화시킨다. 때로는 상대를 향한 비난과 자신의 상처 치유가 별개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기도 한다. 물론 정의 없이 치유와 화해도 없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타인을 비난하는 것 만으로 치유되는 것도 없다.
이렇게 개별 상담으로 두 내담자의 현격한 온도 차이를 아는 것은 이후 부부상담에 많은 도움이 된다. 행위자(가해자)의 죄책감과 피해자의 상처가 모두 치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제로 남게 된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존재
행위자(가해자)의 죄책감을 덜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행위자(가해자)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모험이다. 어디까지 어느 수위까지 이야기가 가능할 것인지 함께 의논하고 정하는 실리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깊은 대화의 문이 열리게 하는 마스터키는 우리가 모두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폭력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살펴보면 폭력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웠던 사람은 많이 없다. 그리고 폭력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삶의 어느 길목에선 피해자였다.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때릴 수는 없다. 이 내용은 아동 청소년의 학교폭력을 다룰 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고 부서지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죄책감을 덜고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냉소와 신경전, 고성과 침묵이 오가던 험난한 여정을 지나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을 받는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이다.
가정폭력을 겪은 부부가 폭행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죄책감도 덜 수 없고, 상처 치유도 할 수 없다.
“과거 사건을 묻어둔다고 그것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올라옵니다. 과거가 과거가 되게 하려면 지금 여기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한 없이 표현하고 나면 먼 옛이야기가 됩니다.”
긴 작업과 상담자의 격려에 힘입어 내담자들은 상처에 매몰되어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죄책감에 변명하지 않게 된다.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의 치유와 화해의 장면은 경이롭다.
부부의 행복을 가정의 평화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