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이전의
내 삶 돌아보기 1

나의 20대는 알바천국이었다.

by 희재

“학비는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나의 20대는 알바천국이었다. 가정 형편상 부모님은 대학 진학을 반기지 않으셨기에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패밀리레스토랑, 마트 보안요원, 주차요원, 카페, 헬스장, 보드게임 카페, 꽃집 팝업 판매등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 학기 중엔 수업 듣고 아르바이트, 방학 땐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대학교 2학년까지는 학비를 스스로 감당했고, 3학년이 되자 취업 준비를 위한 학업에 집중하고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처음 빚을 질 때는 무서웠지만, 나는 믿었다.

졸업 전 운 좋게 취업이 확정됐다. 보건소 계약직 상담사로 일하면서 빚을 조금씩 갚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 취업을 결심했다. 운 좋게 삼성화재 보상팀에 합격했다.

“우린 집 해줄 돈 없다”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알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싸늘했다. 난생처음 고시원에서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월세 55만 원, 학자금 대출, 생활비까지. 모든 걸 혼자 감당하며 새벽에 도시락을 싸고 밤늦게 퇴근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작은 친절이 큰 위로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 한 통이 왔다.

“이번 주까지 고시원 짐 정리 바랍니다.”
재건축으로 갑작스럽게 방을 빼야 했고, 아무런 고지도 받지 못한 채 이틀 안에 나가라는 통보였다.

화가 나서 따졌지만 돌아온 건 2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다. 이걸로 택시비나 하라나 어쩌라나.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남자친구에게 달려가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종일 발품을 팔아 겨우 새 고시원을 구했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방이었지만,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다짐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내가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때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부서지면서도 다시 일어났고, 끝까지 걸어 나갔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단단해졌다.

사람에 덜 기대고, 더 크게 꿈꾸게 됐다. 그리고 내 일을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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