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서 사장이 되기까지
스물넷,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이 생활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근 후 잠을 줄이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여성 전용 운동센터 매니저 모집’ 공고를 보았다.
대학 시절 헬스장 아르바이트 경험이 떠올랐고, 어릴 적 “사장님이 꿈이에요”라고 말하던 내가 생각났다.
그 공고는 마치 꿈을 향한 첫 관문처럼 느껴졌다.
운 좋게 매니저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바지사장이었다. 그래도 나는 진짜 사장처럼 일했다.
내 일처럼, 내 공간처럼. 내가 맡은 공간이니,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일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은 냉정했다. 센터 매니저 3개월 차, 센터의 운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직원들 월급을 주기에도 매출이 벅찼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퇴근 후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접 전단지를 붙이기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빛날 거야.”
그 한 줄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그럼에도 센터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간신히 2년을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 대표가 갑자기 문을 닫자고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억울했다. 이렇게 키워놓은 센터를 여기서 접을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겼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3년만 더 해보고 그때도 아니면 접겠습니다.”
투자자가 접겠다는 데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나는 그렇게 버티기를 택했다. 전체 센터 회의에 나가고, 선배 대표들을 찾아가 배우고, 배운 걸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결국 매출은 안정됐고, 센터는 나의 첫 번째 아이처럼 자리 잡았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대표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처음엔 거절당했지만, 다시 진심을 전했다.
“투자금은 없었지만, 여기까지 키운 건 저였습니다.” 그 말이 통한 걸까.
스물여덟, 나는 진짜 내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업은 기회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사장을 만든다는 걸,
그 시절의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어느새 내 나이 스물여덟, 내 이름을 간판에 걸 수 있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사업은 기회가 아닌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시절의 나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