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했던 순간

사춘기가 대학생 때 온 이유

by 희재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넉넉지 못했다.

아빠의 사업도 잘 안 됐고

다른 사람에게 돈도 사기당하고

식구도 많았는데 아빠의 30-40대가

지금 생각하면 참 힘드셨을 것 같다.


그런 나의 상황들이

빨리 철들 수밖에 없는 아이로 자랐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돈을 덜 쓰실까

내가 필요한 걸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말씀드리곤 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난 일찌감치 나의 모든 경제적인 부분을 독립했다.

휴대폰요금에 내 용돈에 각종 도서구입 등등

학교생활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충당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학교 공부 알바를 병행하며 지냈던 20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그해 운 좋게 장학생 선발이 되어서

거금 150만 원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난 방학 동안 조금만 아르바이트하면

그때 당시 내 등록금 260만 원을 금방 모을 수 있을 거란 부푼 기대를 안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두 달 반동안 풀로 알바를 하면 260만 원 조금 넘게 벌었는데. 이번엔 조금 쉬엄쉬엄 공부와 병행하며

100-120만 원 정도만 벌면 되겠지 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장학금이 입금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때는 학생에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부모 통장으로 장학금이 지급되었었다.

그렇게 방학이 한 달 정도 남아있을 때

난 부모님께 학비를 내야 하니

장학금 받은 걸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웬걸…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며

아빠한테 물어보라 하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눈치 빠른 나는 어떤 결말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아빠에게 재촉하며 물었다.


그때 아빠에게 돌아온 대답은

아빠가 치아가 많이 안 좋아지셔서

급하게 임플란트 하는데 썼다는 말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찌나 서럽고 서운하던지…

물론 아빠의 건강에 필요해서 사용하신 거지만

내가 힘들게 일해서 차곡차곡 모아 학비를 마련한다는 걸 아실 텐데…

그때 너무 속상해서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난 바로 계획을 수정했고

남은 한 달 기간 동안

12시간씩 아르바이트하며

결국 내 학비를 마련했다.


난 사춘기도 없었던 중고등학생시절을 보냈는데

그 사건 이후 급격히 말수가 줄고

내 살길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더 굳게 다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과 그때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부모님은 기억이 흐려지셨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셨다.

당사자는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너무 서운했다고 애들 엄마가 되어서야 말할 수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미련하게 혼자 속으로 삭이고

혼자 떠안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변한 내 성격 덕분에

부모님께도 솔직하게 직언하는 편이다.

참고 둥글게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아직도 그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진 않다.

그래도 애써 좋게 생각해 보자면

나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것

그 덕분에 나는 더 생활력 강한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좀 더 경제적으로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가슴에

콕 박히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서운한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건이다.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나의 경험 덕분에

좀 더 미래를 준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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