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다시 피어난 삶.
둘째 아이가 돌을 지나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저 바닥에 가라앉은 채, 시간만 덧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SNS 속 다른 사람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었고, 지인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기 나는. 솔직히 말해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일조차 버거웠다.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절박한 마음이 생겨서인지 새벽 5시면 눈이 떠졌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기록하고, 강의를 들었다.
육아와 집안일로 지쳐 있었지만, 새벽 1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자 나도 뭔가 다시 생산적인 일을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결론에 이르렀다.
고민은 짧을수록 좋다고 했던가 나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 꽃집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화훼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필기와 실기를 동시에 준비했다. 그렇게 두 아이를 재우고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되면 유튜브를 틀고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시작은 힘듦보다 설렘으로 다가왔다.
필기시험은 교재와 유튜브 강의만으로도 무난히 통과했지만, 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화훼기능사 실기시험은 전문반이 따로 있을 만큼 연습량이 많은 시험이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둘째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고, 국가 지원 학원은 주로 오후 수업 위주라 두 아이를 돌보는 저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밑져야 본전이지. 혼자 해보자.’
밤 10시가 되면 베란다에 있던 꽃 재료들을 거실로 옮겨와 늘어놓고, 새벽 2~3시까지 유튜브 실기 영상을 돌려보며 연습했다. 하루의 에너지를 육아에 다 쏟고 난 뒤였기에,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이 시험을 통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무엇보다 잊고 지냈던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었다. 수면 부족은 일상이었고, 손은 까지고 어깨는 늘 욱신거렸지만 그 시간들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많은 성공한 이들의 말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구나.’
꽃을 만지는 시간이, 제게는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치 내 안에 잠들어있던 나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여기 있어, 나 아직 살아 있어.’라고요.
드디어 실기 시험 당일. 오랜 연습으로 굳게 손을 움켜쥐고, 엄마가 아닌 ‘나’로서 당당히 시험장에 들어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그 공간에 도전하러 온 제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시험을 치르기도 전이지만 마음은 이미 합격한 듯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온전히 제 힘으로 화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커트라인 60점을 간신히 넘긴 62점으로!
돌이켜보면, 그 도전은 단순히 자격증을 따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그동안 엄마라는 이름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내 안의 나를 다시 찾기 위한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