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박사 생존기>
보통 인문사회학 분야의 박사들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대학의 여러 인문사회연구소의 연구교수나 선임연구원으로 졸업 이후의 일을 시작한다. 이런 자리에서는 그나마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연구가 아니라 연구소의 의제에 따라 수행하는 연구지만, 대부분은 박사학위논문과 관련된 분야의 연구소로 취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은 있다.
사실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여서 스스로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는다는 게 힘들어서, 이미 연구의제가 설정되어 있는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연스럽게 박사학위논문 이후의 연구를 진행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은 1년에 학술지에 게재해야하는 논문 편수를 정해놓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연구실적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다. 연구소는 대체적으로 의제에 따라서 개인별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미나, 학술대회, 출판의 업무를 수행한다. 오롯이 연구만을 위한 기관이다.
그렇지만 내가 일을 시작했던 사업단은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 학부 단위의 교과목 연계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즉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형태여서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프로젝트 매니저나 팀장 정도의 위치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를 하게 된다면 나의 노동이 투여되는 시간 이외에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만 해서 쉽지 않다.
나는 ‘객원교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칭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9시부터 6시까지 전일제로 근무해야하는 행정조교들과 달리 자유롭게 출퇴근을 했다. 사실상 ‘객원’의 의미는 당시 내가 소속되었던 기관에서 상당히 애매했고, 이게 내가 일을 그만둔 단초를 마련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자유롭게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9시나 10시에 출근하려고 했고, 퇴근도 행정조교들과 맞춰서 했다.
연구소도 소장의 재량에 따라 다르지만 전일제를 채택하기도 하고, 연구교수들이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한다. 소장은 대부분 교수이고, 교수들은 스스로도 근태를 굉장히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교수들의 근태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많은 연구교수들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는 했다. 연구소나 사업단의 연구교수, 혹은 산학협력중점교수(학술적인 배경보다 현장의 실무경험을 중시하는 자리, 대학의 지역산업 연계가 중요시되면서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도 함)의 경우에는 강의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지역의 사업을 수행하기도 해서 대체적으로는 근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과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큰 장점이다.
박사 졸업 이후 여느 선배들과 같이 인문사회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사업단 일을 제안 받아서 많은 고민을 했다. 지도교수님과 상의해보기도 하고. 물론 박사학위논문의 주제와도 관련된 일이기는 했지만, 연구와 사업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도교수님과의 상의 끝에 한 번 경험해보기로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하기도 했다. 너무 오랜 시간 공부를 했고, 이제 일을 해야 할 때였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이미 모든 사업이 설정되어 있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지원하면서 세운 계획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그렇지만 사업 제목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기획은 내가 해야 했다. 인터넷을 통해 유사한 대학의 사업들을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기획서 예시를 구해서 최상의 기획안을 만들어내는 게 나의 일이었다. 행정조교들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기타 잡무들을 지원해주었다. 기획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
사업단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주요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한다. 교과목과 관련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과 교수들과도 소통한다. 그렇지만 나는 일개 객원교수였고, 정교수인 학교 교직원들이 내 말을 제대로 경청할 리가 없다. 학과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나름 전문 인력으로 뽑힌 내가 그들의 사업에 대해서 코멘트라도 하려고 하면 ‘객원교수 따위가’라는 뒷말만 듣게 될 뿐이었다. 게다가 새파랗게 어려보이기까지 하는 쓸데없는 동안인 내가, 그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는 건 다행히 상사인 정교수도 알고 있는 일이어서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학생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수행한다는 건 꽤나 활기찬 일이었다. 학과 공부에만 관심이 있을 것 같았던 학생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에 화답해줄 때는 보람도 있었다. 진행 과정에서도 나름 시간을 쪼개서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의 보람은 딱 거기까지였다. 대학이 사활을 거는 교육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에 본부의 각종 이목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고, 2천만원이 넘는 사업이 반드시 총장 결재까지 받아야하는 답답한 행정시스템 속에서 숨이 막혀왔다. 게다가 직속상관은 본부 교직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하는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본인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었고, 기획안에 대한 비전문적인 참견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의문이 생겼다. 나는 도대체 왜 ‘객원교수’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와도 관계없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자괴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