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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Jan 28. 2020

#4. 사직서, 자발적 퇴사 이후의 삶

<지방대 박사 생존기>

    



생애 첫 사직서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나는 미친개를 만났고, 이 자리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으려고 한 불분명한 업무체계 속에서 나와 동료 객원교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다른 사람들은 멋있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서 한순간도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세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문제는 대학교에서 흔히 있는 교수와 보통 교직원 사이의 갈등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직원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교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교수들에게 하지 못하니, 나와 같은 힘없는 계약직 교수들에게 퍼부은 것이랄까.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자발적인 사직서를 제출했고, 실업급여도 퇴직금도 없는 위기의 무소속 상태에 직면했다.      


퇴사 이후     


사실 마음을 추스르느라 바빴다. 일부러 더 사람들을 만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발적인 퇴사가 굴복으로 느껴져 지역 언론에 제보를 하기도 했다. 나와 동료 객원교수는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문제는 꽤나 심각한 것이었다. 언론의 제보, 취재 과정에서 상대 교직원은 내게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위협했지만 기사는 실리지 않았다. 나는 힘없는 한 개인이었고, 상대는 대학이었다. 가끔 그 때 생각을 하면 안에서 싸웠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 생애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어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곱씹어 본다 해도 내 선택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12월 한 달은 그냥 흘러갔다. 이전의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이 내년의 새로운 연구용역 하나를 의뢰하고, 지역에서 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모색한 것 정도가 12월의 성과라면 성과겠다. 덕분에 올해 단기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연구용역을 하나 수주했고, 앞으로도 지역의 사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물꼬를 조금이나마 틀 수 있었다. 보통 나처럼 지역에서 박사졸업생들은 이런저런 사업의 자문을 하거나, 지원사업의 심사를 맡기도 하고, 연구용역을 책임지고 수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본업이라고 하기에는 간헐적이고 수입도 정기적이지 않아서 아르바이트 정도로 간주된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업이 있다면 이러한 활동이 부수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이것만을 바라보면서 살 수는 없다.      


새로운 생계의 모색      


때문에 생계를 찾아야 한다. 이번 학기에 대학원 수업 하나를 맡았지만, 이건 정말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전임강사는 월에 백만원 남짓한 수입을 올린다. 이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번 상반기는 연구용역이 하나 있어서 대충 버틴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연구재단에서 다양한 인문사회연구 지원사업이 공고되고 있다. 박사후국내연수펀드에 지원하기 위해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작성하는 연구계획서여서 그런지 잘 써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박사학위 이후의 연구계획서는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뭘 모르면 용감하지만,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면 움츠러든다. 여러 책과 논문을 읽다 보면 재가 전개하려는 논지가 무엇인지 흐려지기만 할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호해진다. 연구를 하며 살고 싶다는 사람이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을 때,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한 연구계획서에 끊임없는 자괴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상한 변태적인 나를 보고 있다.      

문제는, 박사후국내연수의 지원규모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170여 개 과제를 선정했는데 올해는 80여개 과제만을 선정한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라는 지원이 새로 생기면서 기존의 박사후국내연수를 줄인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 어떤 방식으로 공고가 나는지 2월 17일에나 알 수 있어서 엄청난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사후국내연수는 20일 마감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하되, 2월 17일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 공고가 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최종적으로 진행해야한다.      


머리가 아프다. 그렇지만 여기에 내 생계가 달려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박사후국내연수는 연 34백만원이지만, 여기에 4대보험과 퇴직금이 모두 포함되어 나누기 14를 하면 월 2백만원 남짓에 불과한 돈을 받게 된다. 그래도 고정적인 수입이고, 전임강사보다는 더 많다는 점을 위안 삼으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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