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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니바람 Feb 04. 2020

#5. 지방대 박사의 위치

<지방대 박사 생존기>



박사는 차고 넘친다. 인문사회전공에서도 국내 대학에서 손꼽을 정도로만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학문을 선택한 나는, 그것도 서울대나 미국 박사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납작하게 눌리면서 버티고 있다.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막 발을 디딘 상태이지만, 나름대로 여러 상황에 직면하면서 학계라는 곳이 마냥 ‘공부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남을 수 없는 곳임을 깨닫고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할 때면 마음이 먹먹해지고는 한다. 내가 철이 없었던 걸까, 낭만적인 생각으로 안일하게 접근했던 걸까. 안정적인 미래가 불확실한 나와 만남을 이어갈 수 없다고 했던 과거의 그 사람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한다고 비판했었다. 누군가를 품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람은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득 현재 내가 처해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기인한 공포감이, 그 사람이 헤어짐을 이야기했던 그 순간의 느낌이었을까 싶어 묘한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한때는 독립연구자라는 멋진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연구소의 의제에 따라 내 관심사를 바꾸는 그런 연구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지향을 견지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안의 경제적 형편도 좋지 않은 내가 이렇게 몽상가적인 생각을 하면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다니. 이게 어떤 사고의 메커니즘으로 가능했는지 나도 나를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나는 꿈을 이루었다. 소속이 없는, 한국연구재단의 펀드를 갈망하며, 하고 싶은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 기쁘지가 않다. 나는 이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일까?      


지방대 박사의 평판과 쓸모     


대학원 과정을 함께 공부한 친구가 내 앞에서 울었다. 학위과정의 무용함. 좋아해서 시작한 공부가 끔찍한 낙인이 되어 자괴감을 조성하고, 한 사람의 자존심을 뭉개버린다. 은연중에 돌아오는 무시하는 눈빛과 말투. 연구관심사에 대한 조롱. 우리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너는 왜 그런 연구를 해?”라고 묻지 말아야한다. 아무리 별별 이유를 가져다대도, 결론은 하나다. 내가 좋으니까. 알고 싶으니까. 그런데 또 다시 묻는다. “그거 해서 뭐하려고? 사람들이 그런 연구에 관심이나 있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는 학문의 탐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철없는 생각처럼 간주될 때가 있다. 가끔은 그게 대학의 서열에 따라서 구분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서열은 막강하다. 학과 교수들의 학부는 대부분 서울대. 서울대가 아니라면 인서울의 대학이다. 석박사 중 하나는 반드시 외국에서 했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미국박사를 선호한다. 그런 사람들이 지방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은연중에 학생들을 얕잡아 보고, 자신들이 정한 기준 아래에서 그저 그런 수준으로 지도한다.      


‘너희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서울대 학생들과 달라’

‘지방대를 졸업한 너희들은 절대 아카데미에서 일할 수 없어’

‘넌 안돼’       


서울대, 외국 출신 박사들의 잘 쓰여진 논문을 보면 나도 확실히 실력의 차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는 공부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질문해본다. 지방대의 박사학위의 쓸모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내가 있을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본다. 대학 연구소의 연봉은 연차에 따라 오르지 않는다. 내가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동일하다. 10년까지 일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연구계획서를 쓰면서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 나는, 그마저도 1년의 시간만을 확보할 뿐이다.      


지도교수의 이직, 벌써 두 번째    

 

이런 고민의 와중에 지도교수가 3월부터 서울대로 옮기게 되었다. 현 지도교수는 박사과정 2학기 즈음에 또 서울대로 이직한 전 지도교수로 인해 바뀐 경우였다. 대학원에서 꽤 드문 경우인데. 내가 정말 실력 있는 분들과 공부를 했구나 싶으면서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아연한 기분이 든다.      


전 지도교수에게는 석사 때도 지도를 받았었다. 그래서 박사과정 진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분이었다. 박사과정 진학을 권유할 때는 이 대학에서도 충분히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러고는 서울대로 이직을 하셨다. 서울대로 가면서 나에게도 서울대에서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까지 하셨다. 당시의 나는 선생님께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하셔놓고는 왜 서울대에서 공부하자고 하시냐 뭐, 이런 식의.     


어쨌든 두 명의 지도교수를 모두 서울대로 보내고. 이곳에 남은 나는. 그들이 이 대학에서 무엇을 원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의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지만, 또 그 대답을 듣기도 조금은 두렵지만. 이번엔 그래도 지도교수를 잘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이미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사실 두 번째 지도교수도 언젠가는 서울대로 갈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나는 그저 이 지역에 남아서 생존하는 법을 잘 찾아보려고 한다.

의연함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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