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일상
일주일을 고요하게 지냈다. 일주일뿐만 아니라 일상의 대부분이 고요하긴 하지만 이번 한 주는 특히나 고요했다.
택배로 받던 원두가 다 떨어질 때가 되어서 시내 나가는 김에 로스팅 카페 한 군데를 찾아 들렀다.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 그 자리에서 마신 후 최근에 로스팅한 원두 한 팩을 골랐다. 브라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원두를 하우스 블렌딩 한 것으로. 원두도 한국처럼 갓 볶은 콩을 바로바로 배달해 줄 만큼 수요가 크지 않다. 커피 원두도 한국이 신선하고 좋은 이유는 아마도 시장이 크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나름 최근에 볶은 콩에 만족하면서 오늘도 여전히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벗 삼아 신타그마 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서점 꼭대기 층 카페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멀리서 온 친구를 만났다. 나에게 주기 위해 무거움을 마다하고 바리바리 싼 가방을 내밀었다. 아기자기한 그것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루는 온종일 명상이라도 하듯 집안 이곳저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살림을 좋아하는 것일까. 가만히 있다가 이내 책상 서랍들을 정리했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냉장고 서랍들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먹을 것도 만들었다. 주말 대처용 음식이랄까. 미역을 듬뿍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난생처음 어묵볶음도 만들어봤다. 주말이 든든하다. 끓인 미역국을 한 사발 가득 담아 먹는 중에 임윤찬의 쇼팽 녹턴을 들었다. 정말 왜 그때 그것을 들었을까. 먹다가 듣다가 울었다. 그러면서 화들짝 혼자 놀란다. 코를 풀고 ‘정말 위험한 음악이군’하며 다시 미역국을 먹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임윤찬의 녹턴은 그렇게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계속 듣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서두르듯 다른 재생 목록을 눌렀다. 두 세곡의 노래들이 평화롭게 이어지다가 권순관의 <Tonight>이란 노래가 불쑥.
이 노래는 듣는 순간 오랜 과거의 어느 때로 나를 갖다 놓는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흐릿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으로. 음악 듣기가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다양하게 많이 들었던 때, 이름도 낯설고 얼굴도 모르는 (지금도 모르는) 사람의 <A door> 앨범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고 기쁨이다. 그렇게 한참을 들었다가 매우 자연스럽게 잊혔는데 자연스럽게 다시 나타났다. 반가웠다.
오후의 햇빛을 담뿍 입은 빨래를 걷었다. 재스민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도 고요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