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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soo Oct 14. 2022

Cloudy Morning: 우산을 다듬다가

그리스일상

오늘 아침은 흐리다가 비가 후드득 잠깐 동안 떨어졌다.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의 나라이지만 가을부터는 겨울까지는 구름과 비가 공존한다.

메마른 테라스 바닥에 빗방울 자국이 묻어나는 모양에 괜히 설렌다. 비가 드문 이 나라. 그래서 반가운 걸까.

비가 와도 집안으로 들이칠 만큼 세찬 비는 아니기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통 창문을 열고 비 내리는 바깥의 습기를 반겼다. 그리고 자고 난 흔적이 어지러운 이불을 오랜만에 개었다.

베개들도 정리하고 의자 위에 걸쳐져 있던 옷들도 옷장 안에 넣었다.

습관 같은 정리가 의식 없이 이어지다가 현관 앞에 걸려있던 접이 우산에 눈이 멈췄다. 꾸깃꾸깃 뭉쳐져 있는 우산을 펼쳐 우산살을 한데 모으고 우산천 하나하나 종이접기 하듯 바로 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은 ‘정리하다’일까, ‘다듬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정리하다 : 1.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다. 2.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하다. 3.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다.

-다듬다: 1. 맵시를 내거나 고르게 손질하여 매만지다. 2. 필요 없는 부분을 떼고 깎아 쓸모 있게 만들다. 3. 거친 바닥이나 거죽 따위를 고르고 곱게 하다.

단어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바로잡다’.

정리가 몸에 밴 평소 생활습관과는 달리 마음과 사고 패턴은 매우 불규칙해서 때로는 이런 사전적 정의에도 바로 동의가 되지 못한다. ‘바로잡다’는 건 뭐지? 무엇을 ‘바로’ 잡는 건가? ‘바로’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온 건가. 사전의 정의는 역사성과 그에 따른 편견도 포함한다. 아마도 사전적 정의도 나름의 개정과 변화의 역사를 가질 것이다. 언어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들이 대부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생명성을 가지고 변화해 가듯.

 

그렇다면 좀 전의 내 행동은 ‘다듬다’에 가깝겠다. ‘고르게 손질하여 매만지다’. 그래. 나는 오늘 아침 흐트러진 상태로 묶여있던 우산을 펼쳐 ‘고르게 손질하여 매만졌다’. 우산을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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