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일상

‘읽기’를 ‘시작’하다

by becomingsoo

“자연은 신의 시이며,

우리도

그 시의 일부이자 꽃이다.“ _ Novalis


한병철의 <관조하는 삶>에 나오는 인용구이다.

‘읽기’를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무언가를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읽는 행위는 일상 속에 언제나 깃들어 있었다. 소설, 에세이를 비롯해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성 책들까지 오디오북이든 전자책이든 실물책이든 일상 곳곳에 함께 했다. 그런데도 나에게 ‘읽기’는 멈춘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한테서 읽는 행위는 근 2년여 동안 멈춰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노마드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읽기’를 멈추게 한 대신 자연을 읽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태양과 새파란 하늘에 눈부셔 정신 못차리고, 뽀얗고 시원한 지중해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며 바다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느라 바빴다. 매일 아침 형형색색의 과일들을 물에 담가 놓으면 부엌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는 그것들과 눈맞추고 자연이 걸어오는 말에 화답하느라 분주했다.


노마드 인생은 계속 진행중이나, 한국에 있는 시간이 약간 길어지면서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좋은 책들은 매번 언제나 태어난다. 잠시 읽기를 멈추었던 시기에도 좋은 책들은 여전히 탄생되고 있었다. 알라딘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들의 탄생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반가운 신간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습관만큼은 멈춰지지 않았었다. 장바구니에 담긴 채 오랜 시간동안 묵혀있던 책들을 소환하기 무섭게 좋은 책들은 계속 출현했다. 새해 들어 다시 읽기를 시작하자는 결심을 할 필요도 없이 이미 나는 사고 있었고 읽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처음 읽은 책들이 모두 좋았다. 페이지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한 편의 교향곡 같았던 한병철의 <생각의 음조>.

<관조하는 삶>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거기에 있어.”


그리고 두 명의 예술가에 대한 전기,

박찬욱이 20년 전에 썼던 글들의 모음집,

주디스 버틀러와 엘리자베스 그로스, 파울 첼란, 캐런 바라드.


맥락 없는 조합으로 보이지만 내 읽기 이력에서는 너무나 친근한 이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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