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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의 섬세한 가을

살림남의 방콕 일기 (#54)

by 김자신감


태국의 기후는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한국과 같은 뚜렷한 4계절은 찾아볼 수 없다. 일 년 내내 여름만 있을 것 같은 태국 방콕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미세한 변화는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기온의 변화는 젊은 여성에게서 가장 먼저 살펴볼 수 있다. 긴바지와 카디건을 걸친 직장인 여성들을 길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운 한낮에도 긴팔 소매 옷을 입고 걸어다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나뭇잎의 색깔

초록하다 못해 파란색에 가깝던 나뭇잎이 그 색깔을 잃어가고 옅어져 간다. 탱글탱글하던 잎의 표면도 나의 입가 팔자주름처럼 축 처져 힘이 없어 보인다. 아주 가끔 바람이라도 세게 불 때면 하나씩 떨어지는 나뭇잎이 가을이 오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아침 하늘의 색깔

방콕의 하루 중 가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아침과 저녁이다. 짧아지는 해의 길이에 맞춰 아침의 하늘은 파랗다 못해 어느 정도 깊어진다 생각이 든다. 그런 선명해진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가방이라도 싸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저녁 하늘의 색깔

요즘 방콕의 하늘은 매일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 우기 때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노을을 요즘은 매일 다양한 색깔로 즐길 수 있다. 하늘이 깊어지는 만큼 색깔도 화려하고 경이롭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좋지만 태국의 석양도 그에 못지않다. 쉽게 볼 수 없는 오로라보다 매일 볼 수 있는 석양이 개인적으로 더 좋다.


바람의 변화

무지막지하게 내려째는 한낮의 더위지만 그래도 바람은 어느 정도 시원하니 자비롭다. 나무 그늘이나 양산 그늘에서 걸어다가 보면 바람이 금세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말려 준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노라면 찰랑되는 그녀의 머릿결 같은 설레임을 기대할 수 도 있는 계절이다.


방콕에 살아야만 보이는 미세한 변화들. 한국에서 바라보았다면 아직까지 한여름 같은 날씨에 긴팔을 입고 다니는 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10월의 쌀쌀한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12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어 하는 그들의 숨겨놓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방콕의 가을은 섬세한 감성으로 느껴야만 보이는 가장 예민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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