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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옆집 비글 이야기

살림남의 방콕 일기 (#53)

by 김자신감


우리 옆집에는 비글 한 마리가 있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영리해서 우리 가족을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다.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을 대상으로 맹렬히 짖는다. 보통의 개들은 월! 월! 월! 하고 끊어서 짖지만 얼마나 놀라게 하고 화가 났으면 숨도 쉬지 않고 "워~~~~~~~~ㄹ" 그냥 짖다 숨 막혀 죽을 기세다. 그때마다 옆집 비글 주인은 "호~~ㅇ"이라는 소리에 비글은 마지못해 짖는 것을 멈춘다. 그러고 보니 개와 주인의 호흡법과 많이 닮아 있다.


비글의 이름이 '홍'인지, 조용하라는 뜻이 '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문제의 비글을 '홍'이라 부른다. 홍은 대문 앞에 딱 달라붙어 사람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긴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 우리 가족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아내는 똑똑한 홍이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우렁찬 목소리로 집 앞에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짖는 것이라 하고, 작은아이는 홍이 짖을 때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어 계속 짖는 거라 하며, 나는 홍이 비글의 특성상 뛰어다녀야 하지만 갑갑함에 스트레스를 받아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라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어쨌든 홍이 새로 산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를 본 후 더 이상 짖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걸어 다니는 아내를 보면 동네가 울리도록 짖는 모습이 아마도 본인보다 더 빠르고 강해 보이는 대상 앞에서는 침묵하고 힘없고 만만해 보이는 대상 앞에서만 강함을 보이는 거라 생각이 든다. 영리하지만 한편으로 약삭빠르고 기회주의적인 홍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


며칠 전 아이들 픽업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홍을 닮은 한 마리가 대문 밖 길가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얼핏 보였지만 학교에 늦은 터라 갈길을 재촉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집 주변이 어수선하다.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니, 홍은 우리 집 마당이 궁금했는지 현관 앞 까지 들어와 이리저리 킁킁거리며 관찰을 하던 찰나 막 출근하는 아내와 대면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는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지르고 구경 왔던 홍도 덩달아 놀라 워~~~~~~~~~~~ㄹ 하고 짖으니, 때마침 집 나간 홍을 찾던 옆집 주인이 젖 먹던 갓난아이를 안고 맨발로 우리 집 마당으로 뛰어나오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연신 "쏘리쏘리"하다는 홍의 주인의 사과로 작은 이벤트는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홍의 짓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홍의 소리가 없으니 세상이 조용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홍의 특별한 하울링 소리가 재미있다고 얘기하며 그 소리를 추억하곤 했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한국의 가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은 춥다며 재킷을 꺼내 입고 나름 날씨의 변화를 즐기려 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작은아이는 집 앞 대문 앞으로 배드민턴을 치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워킹과 자전거등을 타며 각자의 소중한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때 희미하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홍이 집안 창문 틈 사이로 건재하다는 듯 짧은 뒷다리로 까치발 들고 고개만 겨우 내민 채 짖어되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늦여름 바람과 함께 사라진 홍은 그렇게 이른 가을바람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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