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일생에서 20대 후반의 악성이 가장 인상적이다.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질리도록 들었던 곡이지만 이제야 좋아지는 이유는 그를 공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곡을 이해하는데 40년이 훌쩍 넘겨야 했다. 어떻게 그는 20대부터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세상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일까? 안타까움도 들지만 250년 넘도록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창작한 그가 부럽기도 하다.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8번 2악장. 이곡을 들을 때마다 어떤 심정에서 위대한 곡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프랑스어로는 'Pathetique', 영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sadness, pathos, sorrowfulness 한글로는 비창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 세상의 단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절망적인 제목이다. 이곡을 들으면서 28세의 나이에 느꼈을 비극적인 스토리가 궁금해 그의 내면을 악장별로 한 문장씩 스케치해 보았다.
20대 감수성이 무르익을 나이, 이름모를 질병의 후유증으로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 그가 절망 속의 비참하고 절박한 마음을 담아 3악장의 숨 막히고 격정적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
1악장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 속으로 떨어지며 점점 어두워져 가는 바람소리들에 절규해 보지만 우주 진공 속 메아리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2악장
아무리 떨어지고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달빛이 그를 비추며 상심한 그를 차분히 위로한다.
3악장
위로해주던 한줄기 달빛마저 희미해질 때 이제 그만 바닥에 닿여 몸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바닥이 그리워 열심히 살아가 보리란 실락같은 희망을 꿈꾸며 소나타는 마무리된다.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은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마다 곡의 느낌이 다르다. 다양한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있지만 그중 절제되고 달관한 백건우 님의 2악장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깊어가는 한해, 클래식은 글쟁이의 감성을 더욱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