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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바다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살림남의 방콕 일기 (#45)

by 김자신감


바다가 싫었던 이유는 내가 원했던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좋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내가 원하는 바다로 찾아가면 된다. 무슨 말장난도 아닌 글 장난인지. 하지만 드디어 내가 원하는 바다를 발견했고 이제는 그 바다를 보면서 다시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바다가 싫었던 이유와 좋아지게 된 이유를 찾아서 정리해 보았다.



바다가 싫었던 이유

▶ 붐비는 인파

바다에 도착하기 전부터 밀리는 차량들. 바다를 찾는 이유는 휴식과 위로일 터. 붐비는 인파와 호객행위는 비싼 시간과 돈을 주고 사서 고생하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편안하고 좋은 위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비싼 자릿세를 줘야 한다.


▶ 강렬한 태양

태양이 싫다. 특히 소금기 가득한 바람에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은 바다를 싫어지게 만드는 조건이다. 게다가 그늘도 없어 선글라스, 선크림과 양산 하나로 버티기에 눈부신 햇살이 너무 강렬하다. 무심코 한나절 놀다 보면 다음날 화상 입은 피부로 며칠간은 '고진고래' 해야 한다.


▶ 각종 쓰레기

바다의 낭만 중 하나인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 바다를 맨발로 걷는 것이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하얀 모래사장은 겨울의 첫눈처럼 곱고 편안해 보인다. 매일 갑갑한 구두와 운동화에 구속된 발을 위해 물을 흠뻑 먹은 스펀지 해변가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깨진 유리조각과 날카로운 플라스틱이 주저하게 만든다.


▶ 진한 염분 농도

짠내가 나는 바닷바람. 그 속에서 소금기가 가득 느껴진다. 시원한 해풍을 맞다 보면 한 시간도 안돼 땀을 흘리지 않았어도 몸은 염분으로 눅눅하고 끈적댄다. 꿈꿈한 소금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근처 시원한 카페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 깊어지는 수심

철썩대는 파도를 경계로 발을 담가보지만 어느새 무릎이다. 파도가 경고 없이 몰아칠 때면 준비 안된 티셔츠까지 젖고 만다. 스키장 슬로프처럼 양발에 힘을 주지 않으면 저 바닷속 심해 속으로 미끄러져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급경사.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더 바다를 싫게 만든다.


탁한 물 색깔

바닷속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간다. 특히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해파리나 이름 모를 독성을 지닌 생물들이 발견된다. 물의 탁도가 높다고 물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닥이 보이는 맑은 바닷속을 구경하며 수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속이 보이지 않아 심리적으로 겁나는 바다보다 속 보이는 깨끗한 바다가 더 좋다.



바다가 좋아진 이유

바다가 좋아진 이유는 싫었던 이유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푸껫의 바다는 붐비는 인파도 없이 한적하다. 원하는 자리에 깔고 앉아도 호객행위 없이 자유롭다. 강렬한 태양은 있지만 그늘에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기 충분하고 즉각 즉각 만들어지는 구름들로 드문드문 자연 차광막도 생긴다.


이른 아침 해변을 깨끗이 청소하기도 하지만 프라이빗 비치가 많은 특성상 관리가 잘되고 있다. 맨발로 수 킬로미터를 걸어 다녀도 발바닥이 아프거나 상처 입는 일이 없었다. 모래는 슬라임처럼 부드럽고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첫눈을 밟는 것처럼 순결한 느낌이다. 푸껫의 바람은 바람 속의 짠내가 느껴지지 않아 신선하다. 오래 바닷바람을 맞아도 찝찝하거나 꿉꿉하지 않다.


그늘에 있으면 몇 시간이고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다. 무릎까지 발을 담그려 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10m 이상 바다 안으로 들어와 있다.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아이들이 물놀이하기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깨끗한 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바다의 속을 알게 될 때 비로소 바다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에 들어서야 알게 된 바다의 맛, 푸껫의 바다는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지게 만드는 천혜의 멋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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