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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길에서 멈춰 선 전기자전거

살림남의 방콕 일기 (#58)

by 김자신감


결국 길에 멈춰 서 버렸다. 작은아이를 학교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 전기자전거 미니핑의 삐걱대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과속방지턱 앞에서 과속을 해버렸다. 두드리면 잡소리가 없어지려나 싶어 과도하게 넘었던 것이 화근. '틱- 틱- 틱-' 소리와 함께 힘없이 전원이 나가 버린다.


전기자전거를 산지 2달 정도 지났을까 그동안 수많은 작은 고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큰 물리적 충격에 전원이 나가버려 상황이 심각했다. 500여 미터를 처량히 끌고 오면서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산지 얼마나 됐다고 고장 나는 거지? 무더운 낮에 아이들을 태우고 오려면 당장 미니핑이 필요한데 당장 오토바이로 바꿔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전기자전거의 구조는 단순해서 배터리와 모터만 정상이라면 고장 날 이유가 없다. 잡소리에 화가 나서 과속을 했던 본인 잘못이 크지만 그 정도 충격도 못 버틸 내구성이라면 안전상 계속 타야 할 이유도 마땅치 않다. 구조와 모터의 이상이라면 과감히 미니핑을 보내줘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뒤 배터리 함을 열어 보았다.


불행 중 다행히 4개의 배터리 중 한 개의 단자가 떨어져 있다. 살 때부터 불량이었던 배터리 하나가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단자도 망가졌고 내부액도 세는지라 교체밖에 답이 없다. 배터리를 급히 주문하니 3일 뒤에 받아볼 수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임시로 고쳐 써야 했다. 이곳에서 품질이란 먼 나라 얘기, 인두기를 급하게 사와 납땜을 해봐도 납이 전선에 붙지 않는다.


작은아이의 픽업 시간은 다가오니 마음은 급해지고 오늘따라 유난히 오후 햇살은 뜨겁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터리 3개로만 연결해보니 역시나 출력이 낮아 전원 부족 경고등이 들어온다. 어쩔 수 없이 테이프로 접속부를 붙여 칭칭 감아 고정시킨 후 전원을 켜보니 다행히 정상적으로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작은 진동에도 떨어져 나갈 수 있기에 집 앞 정문까지만 조심히 타고 다녀야만 한다.


정말 태국에 지내면서 이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오늘이 이런 때가 아닐까. "그냥 차를 렌트해 버릴까?", "괜찮은 오토바이를 사버릴까?" 고민도 해보지만 태국에 오면서 불편함을 즐기고 미니멀하게 살아 보고자 했던 목표를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고쳐 잡는다.


이제는 미니핑의 기저귀까지 갈 수준의 전문가가 되었다. 미니핑의 속도와 한계가 어딘지 교감하며 측하며 타고 다닌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싫어 무리하게 주행했던 것이 큰 실책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발이 되어주는 미니핑이 없으니 막막함이 다가왔다. 귀에 거슬리는 잡소리보다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에만 감사하게 되는 겸손을 그녀로부터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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