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생물들의 가을 준비

살림남의 방콕 일기 (#57)

by 김자신감


태국 방콕에도 가을이 오니 생물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확실한 기온 차이가 있어야 계절이 바뀌는 걸 느끼는 나와는 달리 태국의 생물들은 오감을 집중해야 느낄 수 있을 만한 미약한 온도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온의 변화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 나무 그늘 아래 부는 바람, 서늘해지는 수영장의 물 온도 등에서 느낄 수 있지만 집에서도 변화의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 한 부엌 2지파 개미 부족

여름 철에는 잘 보이지 않던 해충들이 적극적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개미와의 전쟁은 정말 끈질기다. 기세가 밀릴 듯하면 과감하게 후퇴를 하고 방심한 틈에 어느새 더 많이 점령해 온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지만 결코 패배는 없는 필승부대이다. 가을을 준비하려는 듯 완악하게 먹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덤벼든다.


얼마 전 싱크대에서 두 종류의 개미집을 발견하였다. 인간의 집을 함께 침략하면서도 같은 종족끼리는 경계를 두고 서로 회피하며 직접 대결하지 않는다. 한 부엌 2지파 개미 부족은 무자비한 인간의 음식을 대상으로 부엌을 협공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비인도적이지만 개미 약을 집 앞에 놓아두어 매일 맹렬한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 1가구 2세대 비둘기 부부

'타다닥 타다닥' 저녁부터 새벽까지 천장에서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작은아이가 베개를 들고 무섭다며 한밤중에 수시로 방을 드나든다. 현재 살고 있는 Semi-Detatched(연립형) 2층 주택에는 1층과 2층, 2층과 루프 사이에는 전기배선을 위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 천장 내부와 외부공간이 연결되었는지 그 사이로 비둘기가 들어와 둥지를 튼 모양이다. 그것도 2세대의 비둘기 부부가 사이좋게 1층 천장과 2층 천장에 살림을 차렸다.


아이들이 1층에서 공부들 할 때나 2층으로 올라가 잘 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기이하고 섬뜩하다. 위생과 안전, 화재위험 등 집주인에게 말은 해놓았지만 집주인도 머리가 아픈 모양인지 연락이 없다. 무허가 비둘기 세입자에게 미안하지만 천장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설치해놓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 우아한 경고장으로 쫓아 보낼 생각이다.



▶ 집 나간 도마뱀들

과거 집안에 들어온 도마뱀들과 공포의 숨바꼭질을 하며 거의 모든 게코들을 밖으로 쫓아 보내었다. 그 이후로 도마뱀들 사이에서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라고 소문이 났는지 도무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먹이사슬을 끊어 버린 탓일까 도마뱀들이 사라지다 보니 개미, 모기, 거미들이 방심한 틈마다 나와 돌아다닌다.


특히 태국의 모기는 크기가 다양해 방충망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종류도 있다. 특히 저녁에는 에어컨을 꺼놓을 때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열기가 많이 나오는 집안으로 모기가 모여들어 밤낮으로 모기향을 피워 놓아야 할 정도니 해충들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방콕에 가을이 오니 집 나간 도마뱀이 그리워진다.



▶ 고독한 옆집 비글

평소에도 분노장애로 지나가는 사람, 개, 고양이, 새 모든 생명체에게 워~~~~~~ㄹ 짖으며 놀라게 하기 바빴던 비글. 요즘 가을을 타는지 그의 하울링에서 고독이 느껴진다. 낮보다 밤에 짖어되는 소리가 유난히 낮고 굵게 울러 퍼져 온 동네를 메아리친다. 아이들이 저녁에 늦은 숙제를 할 때면 그 소리가 유독 아련해 "요즘따라 왜 이리 더 시끄러운지 모르겠어."라는 큰아이가 비글의 고독함을 단번에 알아챈다. 큰 울부짖음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옆집 비글의 고독까지 위로해줘야 하는지 태국의 가을밤은 정말 히안지다.



태국의 1년은 항상 무덥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다만 하루에 한편씩 쓰는 글이 모인 만큼 하루의 시간 변화를 느낄 뿐이다. 나에게는 눈에 띄는 큰 변화 없는 일상이지만 이곳에 살아가는 생물들은 미세한 기후변화에 반응하며 기묘하게 가을을 준비해 나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국 방콕 직장인의 출근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