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니 TV 없는 집이 많습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방콕 집에도 물론 TV가 없습니다. 원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 괜찮았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월드컵 기간 중 축구경기를 못 본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죠. 인터넷으로 중계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해외에서는 인터넷 송출이 제한되어 축구 중계를 시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월드컵을 포기할 수 없죠. 특히 한국전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집 근처 호텔을 알아봅니다. 축구에 관심 있는 나와 큰아이, 작은아이 3명으로 하루 머물 숙소를 검색을 배 보았습니다. 다행히 4성급 호텔이 조식 포함하여 1,700밧 (약 68,000원)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물론 집 가까운 곳에 월드컵 중계를 보러 호텔에 간다는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호텔을 급히 예약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가방을 싸기 시작합니다. 간단히 저녁에 끓여먹을 컵라면과 식은 밥까지 알뜰히 챙겨 넣고, 호텔이니 수영도 빼놓을 수 없기에 수영복, 잠옷 등을 챙겨 집을 나섭니다. 몸은 지쳤지만 다들 축구를 위해 자발적입니다. 편의점에 들러 과자와 음료수도 사고 20분을 걸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신축이 좋습니다. 벌레, 냄새, 수압, 물 빠짐 모든 게 만족스럽습니다. 게다가 간단한 테이블과 의자까지 식탁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편리합니다. 목적은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서지만 모처럼 4성급 호텔에 왔으니 집에서 못했던 플렉스를 즐겨야 합니다. 수영과 헬스를 하고 룸으로 돌아와 준비해왔던 라면과 밥을 아이들과 나눠먹으니 꿀맛입니다.
방콕 집에는 없던 깨끗한 욕조를 보니 사우나가 간절해집니다.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창밖으로 방콕 도심의 야경을 바라봅니다. 7만 원의 돈으로 여유 있는 호캉스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방콕 외에 또 있을까요? 한국전을 TV로 응원하기 위해 왔지만 아이들과 종종 자주 와야겠습니다.
태국은 한국보다 시차가 2시간 느리기 때문에 저녁 10시에 축구 중계가 시작합니다. 특히 유럽리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밤늦게 까지 기다릴 필요없는 점도 태국의 장점입니다. 반신욕을 하니 온몸이 나근나근해지며 작은아이는 그새 잠이 들어 버립니다. 큰아이와 함께 알 수 없는 태국어 월드컵 중계에 집중합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몸이 부서져라 뛰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치열했던 과정을 알기에 비난할 수 없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이 16강을 진출했으니 브라질 전을 위해 다시 호텔을 와야 하는 걸까요? 비용은 부담되지만 8강, 4강, 우승까지 간다면 기꺼이 응원할 생각입니다. 태국에서 보는 월드컵 한국전의 맛은 호텔에서 봐야 제맛이니까요.